음악극『그날이 오면』김문환<서울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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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예술단(단장 이종덕)이 재단법인으로 변신한 후 첫 공연으로『그날이 오면』을 선보였다. 유치진의 원작을 대본으로 삼았다고는 하나 김상렬의 각색을 단순히 언어 극을 음악 극으로 바꾸는 정도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사랑이야기로 끝날 수도 있을 낙랑공주와 호동 왕자의 설화를 오늘을 반성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예술작품으로 전환시키려는 야심마저 엿보이고있다.
특히 자명고로 상징되는 낙랑의 문화와 대비시키기 위해 고구려의 거루라는 신마를 설정한 것은 극적인 긴장의 고조나 볼거리의 확대라는 기능뿐만 아니라 그것이 백성들을 기만하는 정치적 조작이라는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이 소재를 좀더 현대 쪽으로 끌어당겼다. 더구나 그러한 정치조작의 음모를 지적하는 역할을 권력의 승계자인 호동에게 위임함으로써 각색자는 오늘의 쟁점이기도 한 통일이 단순한 팽창주의에 의한 정복이나 흡수 여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각색자가 의도한 상투적인 애정 극으로부터의 탈출, 다시 말해「사랑과 충성이라는 명제에 희생되어 멜러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추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정된 신마 거루와 자명고가 아닌 타명고, 광대가 된 호동의 모습 등이 과연 연극적 구조 속에 제대로 녹아들었는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답변하기 어렵게 보인다.
하지만 노래 극이라기보다 종합예술작품이나 총체연극의 이념에 접근하는 이 공연의 성과는 각색 작업에만 의존할 수 없다. 문학적 기초와 더불어 음악·미술·무용적 요소들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감동 내지 감탄을 자아낼 때 그 공연은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아낼 수 있다. 이런 뜻에서『그날이 오면』은 분명히 성공작이다. 연출자 김효경은 충격효과의 산출에 뛰어난 솜씨를 지니고 있는데 이번 공연에서도 그의 솜씨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정재만과 강만홍이라는 표현어법이 다른 두 안무가를 택해 무용이 단조로워지는 것을 방지했다든지, 특히 자명고의 파열장면에서 이제까지 다소 회화적인 성향이 더 눈에 띄던 송관우의 무대미술을 건축 적으로 전환시켰다든지 하는 것이 그 증거들이다. 지방공연에서 이 자명고의 파열 장면이 제대로 보여지지 못한다면 이 공연의 진미가 희석될 염려가 있다.
그것을 뮤지컬이라 하든, 총체연극이라 하든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 점에서 작곡자 김정택은 연출의 역동성에대한 요구를 잘 만족시켜준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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