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총선/민주화의 시금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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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30년 걸친 왕정종식투쟁 결산/다수당없어 연정 불가피할듯
12일 30년만에 실시되는 네팔 의회총선은 맹아기를 맞은 네팔 민주화의 앞날을 가늠할 중요한 시금석으로 평가된다.
이번 총선은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하원의원 2백5명 전원과 국민평의회로 불리는 상원의원 45명중 35명을 선출한다. 이번 총선에는 1천9백만명의 인구중 총 1천1백만명의 유권자가 참가,21개 정당후보와 수백명의 무소속후보 등 총 1천3백46명을 놓고 옥석을 가리게 된다.
네팔 선거관리위원회는 전체 유권자의 문맹률이 64%에 이르고 있는 점을 감안,정당별로 독특한 상징물을 부여해 투표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출범한 임시정부의 크리시나 프라사드 바타라이 총리(66)는 폭력사태와 투표방해사범을 막기 위해 3만5천명의 군대와 2만명의 경찰을 총동원하는 한편 4만2천명에 달하는 퇴역군·경요원을 소집,경계근무에 배치하고 있다.
192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네팔은 53년 왕정을 거쳐 59년 입헌군주제가 확립됐으나 60년 네팔 의회당(NP)의 급진정책을 두려워한 마헨드라 국왕이 의회를 해산하고 개헌을 단행했다.
마헨드라 국왕은 서구식 의회정치가 네팔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이유로 정당설립을 불법화하고 촌락의회인 판차야트를 확대,의회기능을 수행케하는 국왕친정체제를 구축했다.
입헌군주제의 형태만 남겨놓은 채 실은 완벽한 왕정체제를 확립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네팔 민주화의 불씨는 생명을 잃지 않았다.
불법화된 네팔 의회당·공산당을 비롯한 각종 인권단체·재야세력들을 중심으로 「왕정종식과 의회정치부활」 운동이 꾸준하게 전개됐다.
79년 일어난 시민들의 대규모 민주화시위는 시민들이 왕정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시위 직후 곧이어 실시된 왕정체제 존속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현 비헨드라 국왕이 55%의 지지율을 획득,일단 권력기반의 동요는 막았으나 결국 지난해 2월부터 일기 시작한 대규모 유혈시위로 국왕은 헌법을 개정하고 다당제총선을 약속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총선의 최대관심사는 어느 당이 승리하느냐 보다는 하원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정당이 출현할 수 있느냐에 쏠려있다.
새 헌법은 국가자원의 매각,헌법개정 등 모든 의회결정사항이 의원 3분의 2의 찬성으로만 가능하도록 규정돼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이와 같은 단일거대집권당이 출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번 총선에서 집권이 확실시되는 네팔 의회당 조차도 오랜 탄압과 망명생활로 인해 조직력이 극히 미약해진 상태다. 더욱이 지도자인 가네시 만싱이 부인과 아들을 선거에 참여시키는 바람에 벌써부터 「족벌정치」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9개 좌파 공산세력연합(NCP­UML)도 고질적인 분열상을 극복하지 못한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현지 전문가들은 네팔 의회당(NP)이 90석,NCP­UML당이 60∼70석,네팔 우정당(NFP)이 20석,네팔 민주당(NDP)이 15석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군소정당과 무소속후보들이 나눠가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총선후 연정구성이 부득이하게 될 전망이어서 연정내의 주도권다툼으로 또 한차례의 파란이 예상된다.
이와 함께 네팔 민주화의 걸림돌로 남아있는 부분이 이웃 인도의 내정간섭이다.
내륙국인 네팔이 무역을 하려면 인도를 통과해야만 한다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네팔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인도는 공공연히 정치에 관여해왔기 때문이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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