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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포드와 지도자 인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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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포드는 겸손했습니다. 그는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의 사임으로 졸지에 백악관의 주인이 됐습니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72년 대선을 앞두고 닉슨 재선위원회 측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를 도청하려 한 사건)으로 물러남에 따라 '우연한 대통령(an accidental president)'이 된 겁니다.

"제가 국민 여러분의 손으로 뽑힌 대통령이 아니라는 걸 잘 압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의 기도로 대통령 인준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의 취임사엔 이처럼 겸양의 미덕이 녹아 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죠. 어느 날 포드의 애견 '리버티(liberty.자유)'가 대통령 집무실을 어지럽혀 놓았습니다. 방을 지키던 해군 병사가 정리를 하려고 한 순간 "내가 하겠네"라는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란 그에게 포드는 "남의 개가 어지럽힌 것을 치울 필요는 없네"라고 했습니다. 당시 포드의 대변인이던 론 네센은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포드는 교만하지 않았다"고 회고했습니다.

포드는 정직했습니다. 그가 71년 하원의 공화당 원내대표일 때 닉슨 대통령이 전화로 부탁을 했습니다. 베트남 밀라이 학살의 주범 윌리엄 캘리 중위에 대한 선고를 앞두고 사면을 하면 공화당 의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아봐 달라고 한 겁니다. 그걸 눈치챈 언론인 노박은 포드에게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포드는 "틀렸다"고만 답했다가 30분 뒤 노박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질문이 틀렸다. 대통령이 나를 만난 게 아니고 전화를 한 것이며, 그의 부탁은 부적절했다"고 말했습니다.

포드에겐 포용력이 있었습니다. 7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자신에게 패한 로널드 레이건이 대선 때 적극 돕지 않았다고 서운해했지만 그는 80년 레이건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포드는 전용기 계단에서 실족한 자신을 실컷 조롱한 코미디언 체비 체이스를 백악관으로 불러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이후 둘은 친구가 됐습니다.

한국은 올해 새 대통령을 선출합니다. 선택의 기준으로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능력도 좋고, 정책도 좋습니다. 여기에 인성을 보태면 어떨까요. 꽃에 향기가 있듯 사람에겐 인격이 있습니다. 그걸 살펴보자는 거죠.

지도자의 속이 꼬여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나라가 삭막해지고 국민이 피곤해진다고 봅니다. 자신은 남을 "불량 상품"이라고 매도하면서 타인이 "말을 아끼라"고 충고하면 "모욕하는 거냐"고 화를 내는, 그런 옹졸한 마음의 소유자가 통합의 지도자가 될 수는 없을 겁니다.

명성과 인성을 구분하는 혜안도 필요합니다. 명성엔 거품이 끼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현대의 경영'이란 저서에서 "일은 배우면 되지만 경영자에게 꼭 필요하면서도 배울 수 없는 게 인격"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의 장래를 맡겠다고 나선 대선 후보들의 인성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관심을 갖고 후보들의 언행을 주시해 보십시오. 과거에 대한 탐문도 해 보세요. 투표를 할 즈음엔 판단력이 높아져 있을 테니까요.

이상일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