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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드라마 '연인'서 충직한 보디가드 역 인기몰이 이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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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차갑다, 그리고 슬프다.' 이한(27.사진)을 보면 떠오르는 형용사다. '굳세어라 금순아'(MBC)에서 교통사고로 죽는 금순의 남편을 시작으로, '굿바이 솔로'(KBS2)의 사악하지만 불쌍한 지안을 지나, '연인'(SBS)에서 충직한 보디가드 태산을 연기하며 주가를 높이고 있는 이한.

꼭 다문 입에서는 청각 장애인 부모와 여동생을 돌봐야 했던 청년 지안의 외로움이 묻어나오고,

날카로운 눈빛에서는 조직의 보스를 보호하는 일을 생명처럼 여기는 태산의 충성심이 불타고 있다.

"인상이 차갑게 보여서인지 어두운 역할을 많이 맡게 되네요. 원래 성격은 푼수에 가까운데 말입니다. 작품이 끝나도 슬픈 감정이 빠져나가지 않아 힘들지만 잘한다는 소리 들으니 기분은 좋네요."

보스 강재 앞에서 "예" "아닙니다"를 절도 있게 내뱉는 이한은 알고 보면 엄마와 수다 떠는 게 취미라고 한다. 그는 "다들 장남인 저를 막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애교도 많은데 그런 건 안 봐주시네요. 하하"라며 웃어 보였다.

그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 역할이 있다.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룬 독립영화 '후회하지 않아(감독 이송희일)'에서 남자 수민에게 어쩔 수 없이 끌리게 되는 재민이다. 지난해 11월 개봉한 이 영화는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4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가 됐다. 수민의 손을 꼭 잡고 해변을 거닐고, 그의 뺨에 살포시 손을 갖다대는 장면 등을 통해 이한은 그들의 진실한 사랑을 제대로 그려냈다는 평을 들었다. 그는 "워낙 내용이 센 시나리오라 실제 동성애자 아니냐는 오해도 받고 있다"며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역시 이한에게 대중적인 인기를 실감케 한 것은 작지만 큰 역할인 '연인'의 태산이다. 보스를 무조건 믿고 따르는 의리의 사나이에게 열성팬들이 보내는 지지의 박수소리는 드높다.

그 여세를 몰아 그는 8일부터 방송되는 KBS-2TV 월화드라마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박건형.박시연 등과 함께 주연을 맡았다. 사법시험 1등에 재력까지 뒷받침되는 백마 탄 왕자 같은 준기가 그가 새롭게 표현할 역할. 박건형은 아버지가 전과자이지만, 정의감에 불타는 검사로 나와 이한과 대립각을 세운다. 명랑한 분위기의 드라마 속에서도 이한은 또 나름의 슬픔을 연기한다고 한다. "준기는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다는 오만으로 가득 찬 사람이에요. 그러나 사랑을 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아픔도 알게 되죠."

그는 왜 이리 슬픔과 인연이 많은 것일까. "얼마 전에 부친상 당하신 노희경 선생님 상가에 갔어요. 마음이 아팠죠. 선생님은 '굿바이 솔로'에서 제가 맡았던 지안이 부분만 쓰면 너무 괴롭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드라마 하면서 우리집 이야기도 하고 선생님 살아온 이야기도 듣고 서로 대화를 많이 했죠. 드라마 한 작품을 통해 제가 그렇게 클 줄 몰랐어요."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을 도중에 그만뒀다는 그는 일찌감치 생활력을 키우며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고도 했다. 서빙은 기본이었고, 바텐더.설거지 아르바이트 등 닥치는 대로 했다. "설거지 일을 도망 안 가고 6개월 동안 해냈더니, 칼을 잡아보라며 주방 일을 가르쳐 주시더군요. 김치는 물론이고 웬만한 경양식 요리는 다 만들 줄 알아요." 이렇듯 그는 끈기가 있다. 또 남의 어려운 사정도 먼저 헤아린다. 촬영장에서 그의 별명은 '할 일 찾아 두리번거리는 배우'다. 스태프가 소품을 옮기면 같이 옮기고, 가끔 붐 마이크도 잡아 준다.

그렇다고 그가 분위기 돋우는 데만 신경 쓰는 배우는 아니다. '연인'의 촬영 도중에는 액션신에 열중하다 손가락 골절상을 입을 정도로 연기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다. 그래도 자신의 연기가 불만이라는 그는 "빨리 서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인생 경험을 더 많이 쌓아 슬픔의 감정 말고도 다른 모습을 표현해 내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껏 극중에서 여주인공과 한번도 맺어지지 못했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이한이 애절한 사랑 연기를 보일 날도 곧 오지 않을까.

글=홍수현 기자<shinna@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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