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 의혹 법정선 밝혀질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해명 성」「짜 맞추기」수사라는 비난을 받았던 수서 지구 택지 특별 분양사건이 국회에서 정치쟁점화 되고 있는 가운데 이 사건 첫 공판이 29일 열려「수서 의혹」이 다시 한번 법정에서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에 쏠린 국민들의 관심을 반영하듯 재판부·검찰·변호인 등 당사자들은 공판에 대비, 도상연습을 하는 등 각자 공판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검찰은 25일 김동주 의원 등을 불러 마무리 조사를 하는 등 피고인들의「돌출행동」에 신경을 쓰고 있는 한편법정에서 피고인들이 어떠한 주장을 내세우더라도 이를 반박할 대응 자료수집에 힘쓰고 있으며 재판부는 원활한 재판진행을 위한 법정질서 유지에 최우선 목표를 두고 있다.
이 사건 재판은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과 이원배·이태섭·오용운·김태식·김동주 의원 및
장병조 전 청와대비서관 등간에 오간 금품수수 등 공소사실에 대한 다툼보다 수서 택지 분양을 가능케 했던「외압」의 실체와 한보 로비자금 규모라는 재판 외적인 부분이 관심을 끌고 있으나 공소사실의 유·무죄만을 다투는 재판의 속성을 고려할 때 이 문제가 어느 정도까지 부각될지는 의문이다.
다만 의원들은 공소사실이 정치 생명과 직결된 데다 이 사건을 둘러싼 정치적인 성격으로 말미암아 나름대로 항변을 제기, 재판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피고인들은 수감초기와는 달리 재판이 다가오면서 공소장을 숙지하는 등 일부를 제외하곤 구치소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쟁점=공소사실 골자는 정 한보회장이 수서 지구 택지를 특별 공급받게 해주는 대가로 의원들·장 전 비서관 등에게 건네준 12억5천만원이 뇌물이라는 것.
검찰은 의원들이 직무와 관련해 받은 돈이기 때문에 명백히 뇌물죄에 해당한다고 기소했다. 반면 변호인들은 청원점수 및 처리를 고유 업무로 하고 있는 의원직무상 이 돈은 뇌물이기 보다 정치자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의원들이 정 회장에게 받은 돈이 과연 뇌물인지, 정치자금인지 여부를 따지는 「명목 규 분」이 최대 쟁점.
법원 주변에서는 장 전 비서관의 경우는 뇌물죄 성립을 다룰 여지가 없지만 의원들 부분은 다소 논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의원들 가운데 뇌물액수가 많아 유죄가 선고될 경우 실형가능성이 높은 이원배(4억6천만원)·이태섭(2억 원)의원은 강하게 무죄를 주장하리란 예상이다.
검찰은 뇌물죄 구성요건이 포괄적인 직무관련성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유죄입증에 자신 있다는 태도다.
더욱이 정 회장 진술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으로 객관적 사실이 명확한 만큼 의원들의 금품수수 액·수수시기·용도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들 주장은 터무니없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의원들이 공소사실을 부인하면 정 회장을 증인 자격으로 법정 대질신문까지 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피고인들에 대한 직접신문 사항을 정 회장 70항, 장 전 비서관 60항, 다른 피고인 20∼40항씩을 준비해 조목조목 따지는 방법을 택해「수사미진」이란 지적을 씻어 낸다는 작전이다.
이에 대해 변호인들은 뇌물죄의 경우 공여·수수자간에 필요 적 공범 관계일 때 성립하기 때문에 수서 사건처럼 집단민원 해소 취지에서 단순 동조로 빚어진 금품수수는 뇌물죄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편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 사건은 주택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시 등의 행정난맥에서 빚어진 문제가 원인행위를 제공한 것이며 사후·부수적인 금품수수이기 때문에 정치자금이라는 이론이다.
변호인들은 또 수서 택지 분양 절차 등 행정상 문제점을 밝히기 위해 홍성철 전 청와대 비서실장, 고 건·박세직 전 서울시장 등에 대한 증인신청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피고인들의 법정태도도 양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공소사실 이외 부분은 가급적 거론하지 않으리란 전망이다.
따라서 이번 재판을 통해 ▲외압실체 ▲민자당 정치자금 수수설 ▲정 회장의 로비자금 규모 등 의혹이 풀릴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재판부 대책=이 사건 재판을 위해 특별기일을 지정한 서울형사지법 합의30부(재판장 이철환 부장판사)는 공판 때마다 많은 방청객이 밀릴 것으로 보고 있으나 첫 공판부터 방청을 제한할 경우 오해의 소지가 있어 29일에는 방청 제한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방청객이 몰리거나 법정소란으로 재판을 진행하지 못할 경우 2차 공판부터는 방청권을 발부하는 등 방청 제한조치도 검토하고 있다.
따라서 29일 첫 재판 때 방청소란이 일면 곧바로 재판이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
◇피고인 근황=서울 구치소에 수감된 피고인들은 독서·면회·명상 등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사식대신 구치소에서 주는 관 식을「건강식」이라며 즐겨 먹고 있다는 것.
한때 수감증인 운동권 출신 대학생들이 피고인들에게 『수서 비리 의원은 물러가라』며 면박을 주기도 했으나 의원들이 가급적 의원「티」를 내지 않고 조용히 지내자 이런 일이 상당히 수그러들었다고 구치소 관계자는 전했다.
고령인 정 회장은 당뇨·협심증 등으로 병상조회 신청을 내놓고 있으나 면회 오는 한보 임원들에게 회사정책 결정 및 경영방향에 대해 구두 결재하는 등 기업회생에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다. 정 회장은 또 수서 사건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의원들과 하청업체·채권자들에게 특히 미안함을 토로한다는 것이다. <김석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