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만은 미국 닮지 말아야"|뉴욕주 맨해턴 검찰청 강력부 검사 18년만에 모국방문 전경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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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미국의 뉴욕은 범죄와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에서 지고 있습니다.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데다 범죄라도 저질러 한 건 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풍조가 확산되기 때문이지요.』
뉴욕주 맨해턴 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 전경배씨(29)는『한국은 이런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교 6년 때인 73년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18년만에 모국을 다니러 온 전씨는『돌아와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사람이라 너무 반갑고 좋다』면서『적성에 맞는 일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으로 영구 귀국해 살고 싶다』고 말했다. 고향의 친척들에게 인사차 지난15일 입국한 그는 27일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12세 때 아버지 전병창씨(61)의 사업실패로 3남매를 포함한 5명의 가족과 함께 미국 이민길에 올랐던 전씨는 뉴욕의 스타이비슨트 고·볼티모어의 존스 홉킨스 대에서 철학·정치학을 전공한 뒤 뉴욕의 포어담 법대에 입학, 87년에 졸업했다.
그는 졸업직후 변호사 시험 합격과 동시에 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들어가기 어렵다는 맨해턴 지검에 검사로 지원, 이 지검 사상 첫 한국인 검사가 됐다.
4백 명의 검사가 있는 맨해턴 지검은 미국 내 최대 규모며 당시 7천명이 응시해 50명이 합격, 1백40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현재 지검의 한국인 검사는 모두 6명이고 전씨가 고참이다.
1년 전부터 동양 계 갱 수사를 전담하고 있는 그는 뉴욕의 갱에 대해『규모나 숫자로는 중국계·월남 계·한국계 순이며 한국계 갱은 5∼6개 조직에 1백여 명이나 점차 늘어나는 추세』 라고 밝히고『한국신문을 보니 성폭행이 뉴욕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뉴욕 이민 후 목사가 된 아버지와 함께 뉴욕 근교의 단독 주택에서 살고 있는 전씨는『언어 장벽은 없었느냐』는 질문에『한국말 실력을 유지하는 일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지난 18년 동안 미 주 중앙일보·한국일보를 매일 보았으며 지금도 현지 유선 TV등을 통해『서울 뚝배기』등의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다는 그는『국적은 미국이나 언제나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또 잊지 않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1백50명의 회원을 가진 뉴욕 한인 변호사협회 이사를 맡고 있는 전씨는 미혼이며 한국말을 잘하고 기독교 신자인 대졸여성을 아내 감으로 찾고 있다. 연봉 4만7천 달러(약 3천4백 만원). <글=조현욱 기자·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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