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대는 아동문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아동문학이 정서의 향기를 잃어 가고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 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l926년 잡지『어린이』에 뽑혔던 당시 15세 소년 이원수의 동시『고향의 봄』은 순수한 정서로서 민족적 공감대를 형성, 남북 분단 상태에서도 공동응원 때 불릴 정도로 제2의 애국가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동화 등 현재의 아동문학은 출판사의 상업성, 일부 아동문학가들의 작가정신 부재 등으로 인해 흥미위주나 난해성의 양극을 달리며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성의 소리가 높다.
근간『문학사상』5월 호는 이재철·정채봉·유경환씨 등 아동 문학가 3명의 특집 좌담을 통해 오늘의 아동문학을 진단했다.
이 좌담에서 이씨는『동화면 그냥 동화인데 소위 철학동화·성교육 동화가 판을 치고 있고 소년소설은 명랑 소설·괴기 공포소설·경제소설·환경소설 등 제멋대로 붙인 장르 명칭이 횡행하고 있다』며 순정 성을 잃은 흥미위주 동화의 난맥상을 비판했다.
이씨는 특히 이 가운데『어른이 읽기에도 얼굴 뜨거운 성교육 동화, 선생과 어른을 골탕먹이는 억지 춘향 적 명랑 소설, 대만의 강시소설에 영향받아 송장이 살아나 해괴 망칙한 장면을 벌이는 소위 오싹오싹 공포 체험 소설 등은 공해 아동도서』라며 아동문학의 이러한 피폐상을『출판사의 상업주의에 아동문학가들이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데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유씨는『해방 직후에 일본말 세대가 이와나미 문고나 일본 문학전집에서 옮겨 베껴 낸 소위 세계 명작이 아직도 판을 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일어 중역문제를 꼬집었다. 일어 중역만 되풀이되고 있으니 함께 사는 공존의 철학은 없고 19세기 서구 열강들이 추구하던 영토확장이라는 제국주의 정책에 걸맞은 개척·탐험·모험 물, 전쟁영웅이나 침략을 일삼는 인물들의 위인전이 아직도 외국 명작 선집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씨는『천편일률적인 동심 타령에 진력이 났다』며 실험정신이 부족한 동시를 비판했다. 정씨는 1990년대인데도『1950년대의 동심을 실은 동시만 즐비하게 생산되고 있다』며 『일부 동 시인들의 난해 작품은 이런 괸 물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몸부림으로는 보이나 도대체 알 수가 없어 안 읽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근간『현대시학』 5월 호에 기고한 평론「시와 동시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위하여」에서 『동시를 일반시의 종속 장르나 대립 장르로 보아 동시의 역할과 위상을 폄하 시킨 게 문제』라며 『결국 동시도 시로 보아야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러한 아동문학의 피폐상은 아동문단 자체가 야기했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한국아동문학가 협회」「한국아동 문학회」「한국 현대 아동 문학가 협회」등 전국 규모의 아동문학협회가 3개로 난립, 80년 3백 명에 지나지 않던 아동문학인 수를 현재 7백여 명으로 불릴 정도로 아동 문학인을 양산하여 작품의 질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거기에 출판사들의 상업주의가 가세한 것이 오늘의 아동문학가 현실이란 비판이다.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