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터 '유적 보물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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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주한 미국대사관 및 직원 숙소 신축 예정부지였던 덕수궁 터(옛 경기여고)에서 고종황제가 아관파천(俄館播遷) 당시 피신하며 사용했다는 소로(小路) 등이 발견된 조사 보고서가 공개돼 미국대사관 신축은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다.

서울시는 5개월 동안 연합조사를 벌인 한국문화재보호재단과 중앙문화재연구원이 "궁궐터였음이 확실한 만큼 보존해야 한다"고 최종 결론을 내리자 "정부와 대체 부지를 마련토록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현재 미국대사관저 북서쪽 담장 외곽에서 발견된 문(門) 터는 대사관저 서쪽 출입문을 나와 부대사 관저로 향하는 길목에 있다. 문의 초석(주춧돌)으로 보이는 석재들이 지표에 노출돼 있으며 초석 간격으로 미뤄 문의 너비는 1m90㎝ 정도로 추정된다.

또 2~3단 석축으로 된 계단 시설이 남아있으며 문은 남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터 주변 작은 길이 고종이 아관파천 당시 피신했던 통행로며 러시아공사관과는 약 1백50m 떨어져 있다.

덕수궁 건축 부재였던 장대석 (네모나게 다듬은 돌)과 사고석(화강석을 다듬은 작은 석재)을 이용한 석축도 세 곳에서 발견됐다. 석축은 경사면을 지탱하기 위한 축대 시설로 대사관저 북쪽과 서쪽을 따라 쌓여 있다. 북쪽 석축은 길이 1m, 두께 20㎝ 안팎의 장대석으로 축조해 3~4단 정도 남아 있다. 서쪽 석축은 사고석을 이용해 3단씩 2층으로 쌓아올렸다. 대사관저 외곽에 위치한 배수로에서도 장대석들이 발견됐다.

조사단은 문헌조사로도 이 지역이 원래 임금의 어진을 모신 선원전(璿源殿)과 임금이 돌아간 뒤 왕의 혼백과 시신을 모셨던 흥덕전(興德殿) 등이 있었던 신성한 영역임을 확인했다.

◇대책=서울시는 정부와 협의해 외교 마찰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로선 경기여고 자리 1만3천여평을 대체할 마땅한 부지가 없다"며 "외교문제인 만큼 정부가 적극 나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를 공개한 정병국(한나라당)의원은 "조사 결과를 보면 대체부지를 물색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영유.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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