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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돼지띠 … '베이비 붐'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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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서울 강남구 M산후조리원의 박진희(43) 상담실장은 요즘 밀려오는 상담 전화를 받느라 점심도 거를 지경이다.

임신 계획을 세운 부부에서 이제 막 임신한 사람까지 산후조리원 예약을 서두르는 사람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박 실장은 "웬만한 조리원은 5 ~ 6월까지 예약이 꽉 찼다"며 "'황금 돼지해'에 아이를 낳으려는 임신부들은 서둘러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이 황금 돼지해로 불리면서 임신.출산을 계획하는 가정이 부쩍 늘어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2006년은 결혼에 길(吉)하다는 '쌍춘년(雙春年)'이어서 결혼식이 전년보다 3.7% 증가했다. 올해에는 황금 돼지해가 이어지면서 전국적으로 신생아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 저출산 추세 반전 기회=통계청은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조출생률)가 2005년 9.0에서 계속 높아져 2007년 9.3으로 정점을 이룬 뒤 2008년부터 9.0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통계청은 계속 감소하던 조출생률이 2006~2007년에 잠깐 반등하는 것은 쌍춘년과 황금 돼지해의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 '즈믄둥이' 낳기 열풍이 불던 2000년에도 조출생률이 반짝 상승세를 기록한 적이 있다.

지난해 5월 결혼한 회사원 박수하(29.여)씨는 1월 중 아이를 갖기 위해 본인은 한약을 먹고 남편은 술을 줄이고 있다. 박씨는 "출산을 1~2년 미룰 생각이었지만 황금 돼지해라는 시부모님의 성화에 임신하기로 마음먹었다"며 "기왕이면 팔자가 좋다는 해에 아이를 낳고 싶다"고 말했다.

산부인과도 바빠졌다. 강남 차병원은 "2006년 10월 산부인과 외래환자는 1만9000여 명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31%가량 늘었다"고 밝혔다. 불임 치료 시술 건수도 전년 대비 61% 늘어났다고 한다. 차병원 관계자는 "황금 돼지해 얘기의 영향으로 보인다"며 "출산 예정일을 음력에 맞춰 설날 뒤인 2월 말 이후로 늦추려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부러 출산을 늦추는 사람들도 있다. 회사원 오한우(34)씨는 부인과 상의한 끝에 2009년께 첫 애를 갖기로 결정했다. 오씨는 "내가 베이비붐 세대여서 입시.취직에서 모두 역대 최고 수준의 경쟁을 거치느라 힘들었다"며 "자식에게도 그 같은 고생을 물려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섯 살짜리 딸을 둔 주부 강은정(32)씨도 "즈믄둥이에 이어 2007년생을 뜻하는 '골든 피기'(Golden Piggy.황금 돼지 새끼라는 뜻)들도 경쟁에 치일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실제로 즈믄둥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올해 서울 주요 국립.사립초등학교 지원 경쟁률은 서울사대부속 21.8 대 1, 교대부속 20.6 대 1 등으로 예년보다 강세였다.

◆ 황금 돼지 특수 오나=업계는 황금 돼지해를 이용한 마케팅에 골몰하고 있다. 특히 저출산으로 썰렁해졌던 영.유아 용품 업체들은 특수를 노리고 있다. 남양유업은 연 250회씩 열던 임산부 교실을 올해 300회까지 늘릴 계획이다. 최근 5년 동안 마이너스를 기록한 분유 매출이 내년에는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아복 업체인 아가방도 "황금 돼지 관련 각종 상품 기획과 아이디어로 회사 분위기가 고조됐다"고 전했다.

은행들은 황금 돼지해를 기대하는 고객의 심리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 부산은행은 올해 안에 출산하는 고객에게 '황금 금리' 0.1%포인트를 추가로 얹어주는 '황금 돼지 정기예금'을 특별 판매하고 있다.

유통업계.기업에서는 고객들에게 황금 돼지 관련 기념품을 증정하는 이벤트가 한창이다. 황금 돼지 저금통.기념품을 생산하는 업체들도 대목을 맞았다. 20년 동안 돼지 저금통을 제작해온 와룡산업 김상곤 대표는 "전 직원이 휴일을 반납하고 하루 1만 개씩 저금통을 찍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보다 두 배가량 늘어난 30억원대의 매출을 올해 기대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돼지 저금통이 한 집에 한 개씩은 있을 정도로 인기였으나 90년대 중반 이후 동전 유통이 침체하면서 돼지 저금통도 퇴조의 길을 걸었다. 김 대표는 "10년 만에 찾아온 특수"라며 반겼다. 귀금속 업계도 '황금 돼지'가 주는 어감 때문에 금이 강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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