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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반도 정세를 전망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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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김영희=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한 2006년의 사건을 염두에 두고 새해에는 북핵 사태로 인한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먼저 전망을 좀 해봅시다.

오버도퍼=2006년 동북아시아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powerful events)은 북한이 7월에 미사일을 발사하고 2006년 10월에 핵실험을 한겁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외교와 압력으로 북한 핵실험을 저지하려던 한국과 미국과 중국의 노력이 실패한 것을 극적으로 상징합니다. 최근에 열린 6자회담에서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은 확실한 컨센서스에 바탕을 둔 효과적인 대북 접근을 하지 못했어요. 이런 분위기라면 북한은 더욱 용기를 얻어 추가 핵실험으로 전략 무기를 강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정인=6자회담은 대북 금융제재 문제로 난항을 거듭할 걸로 봐요. 오는 22일 열리는 방코델타아시아의 북한 계좌 관련 북.미 실무협상에서 구체적인 합의를 보지 못할 경우 6자회담 무용론이 대두돼 북핵 문제는 혼란에 빠질 겁니다. 그런 와중에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강행하는 벼랑끝 외교의 행태로 나오면 미국의 부시 정부는 물론이고 민주당 지도부까지도 강경으로 선회해 대북 제재 국면이 강화될 전망입니다. 이런 사태가 군사적인 충돌로 발전하지는 않겠지만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사적인 긴장은 고조될 수 있어요.

김=부시가 지난달 하노이에서 한국전 종전을 공식 선언하는 문서에 자신과 김정일과 한국 대통령이 함께 서명하자는 제안을 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어요. 북한과 김정일에 대한 부시의 태도 변화는 진실한 겁니까.

오버도퍼=태도 변화라고 생각지 않아요. 국무부 자문관을 지내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오랜 친구인 필립 D 젤리코가 진행시킨 계획이었어요. 미식 축구의 '헤일 메리 패스 (Hail Mary Pass) '같은 거죠. 성공 확률이 매우 낮은 패스인데, 경기 종료가 임박했을 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경우 이기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던지는 긴 패스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안이 진지하게 검토되진 않았어요. 북핵 문제 해결 없이, 그리고 근본적인 북.미 간의 적개심 해소 없이 그게 가능할 수가 없죠.

김=문정인 교수, 한국 정부는 이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문=그 부분은 지난해 베이징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의 한 부분으로 새로운 건 아닙니다. 부시 대통령이 한국전쟁을 종료시키는 복잡한 절차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문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얘기는 아니지만 부시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에 관한 인식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그런 의미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후나바시=그건 좋은 생각입니다. 북한이 오래전에 먼저 제안한 것이었어요. 적절하고 중요한 비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시점에 미국 정부가 그 문제를 진지하게 접근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실제로 부시가 2006년 4월말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뒤 중국이 김정일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냈는데 김정일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선 공식 제안이 아니었고, 부시가 핵문제를 평화구축 문제와 어떻게 연관지을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북한은 핵무기라는 선악과를 따먹은 셈입니다. 김정일은 사담 후세인이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아서 미국의 침략을 받았다고 진지하게 믿고 있는 것 같아요. 김정일은 과연 핵무기를 포기할 것 같습니까.

후나바시=북한은 핵실험을 했고, 6자회담에서 핵보유국 대표로 행세하는 김계관의 행동에서 볼 수 있듯 이제는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포기를 끌어내는 게 더욱 어려워졌어요. 북한의 핵 포기를 부정적으로 봅니다.

문=북한은 핵무기와 그것을 운반할 중장거리 미사일 능력을 갖고 있고, 지하 핵실험까지 했어요. 그러나 북한 핵실험이 성공했는지, 핵무기를 미사일에 탑재할 만큼 소형화하는 기술을 가졌는지 의문입니다. 이것은 아직 북한이 완전한 핵무기 보유국이 되는 것을 막을 시간이 있다는 의미죠.

후나바시=지금의 시점에서 판단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최근 6자회담에서 북한은 힐이 얼마나 유연한 권한을 가졌는지를 테스트해 본 것 같아요. 힐은 전보다는 많이 유연해졌지만 충분치는 않았어요. 북한도 그렇게 판단했을 겁니다.

김=일본은 핵무기로 무장한 북한과 공존할수 있습니까.

후나바시=일본은 완전한(full-titled) 핵 보유국 북한은 고사하고 절반의(half-titled) 핵보유국인 북한도 용납하지 못합니다. 북한의 핵무장은 일본을 미치게 만들고 더 위험한 국가로 만들 겁니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면 19세기 이후 형성된 일본의 동북아 질서에 대한 전통적인 시각이 바뀔 거예요. 일본은 아주 급진적으로 변화할 겁니다. 특히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관계의 신뢰성에 의구심을 갖게 되면 사태는 더욱 유동적이 될 겁니다.

문=동북아에서 핵의 도미노식 확산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핵에너지 협력 협정을 맺고 있는데 한국과 일본이 핵보유국이 되려면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미국으로부터 핵 연료를 얻을 수 없어요. 모든 것은 미국에 달렸습니다.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의 5개국은 북한이 계속 극단적으로 나가면 '6-1' 형태의 5자 다자안보협의체제를 출범시켜 북한에 대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5개국이 공조해 지혜를 모으면 핵을 가진 북한에 대항하는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김=오버도퍼 교수는 부시 대통령은 오른쪽으로 가고,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은 왼쪽으로 표류해 한.미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는데 한.미 관계의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오버도퍼=표면상으로는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것 같아요. 경주에서 2005년 11월 열렸던 한.미 정상회담 땐 최악이었어요.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부시와 노무현 대통령은 서로에 대해 매우 화가 나 있었고, 개인적으로 감정에 앙금이 남을 정도였다고 해요. 특히 부시 쪽이 더욱 그랬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나 2006년 9월에 노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해 부시와 정상회담을 겸한 오찬을 했을 때는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어요. 2006년 11월에도 두 사람이 만났지만 노 대통령이 PSI에 대한 전폭적인 동참을 거부한 결과 회담은 별 성과 없이 끝났어요. 한.미 관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됐다고 보긴 힘들어요.

김=문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대미 외교가 덜 자주적이고 더 실용적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진 않습니까.

문=어떤 나라도 100% 자주적일 수는 없죠. 한 예로 북한이 추구하는 100% 자주 노선은 이데올로기요 비전이지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요. 노 정부의 자주외교 정책도 마찬가지죠. 현 체제 안에서 좀 더 많은 발언권을 갖겠다,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거지 100% 자주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동맹은 상호의존이지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는 아니라고 노 정부는 생각해요. 지금까지 한국이 미국에 너무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걸 바로잡으려는 의식적 노력이 반미나 한.미 동맹을 해치는 행동으로 보이는 거죠.

오버도퍼=한.미 동맹과 다른 책임들 사이에 균형을 맞추겠다고 하는 게 문제죠. 위기 상황이 온다면 한국이 과연 믿을 만한 동맹국이 되어 줄 것인가 아니면 동맹국의 의무(commitment)와 북한이나 다른 나라에 대한 의무 사이에 '균형'을 잡을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있기 때문에 동맹관계가 삐걱거리고 있어요.

후나바시=노무현 정부 초기에 '균형적 역할'등을 강조하는 새로운 아이디어 몇 개를 제시하면서 동맹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어요. 김대중 정부 때와 비교해 봐도 노무현 정부의'평화 번영 정책'은 DJ의 햇볕 정책의 계승 내지 확장을 표방하고 있지만 현 대북정책의 원조인 햇볕정책 때는 오히려 한.미.일 동맹 관계가 지금보다 훨씬 돈독했어요.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햇볕정책을 진정으로 계승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어요.

김=후나바시 박사, 일본 아베 정부의 대북 정책은 고이즈미 정부의 그것과 많이 다릅니까.

후나바시=아베 정부의 대북 정책은 고이즈미와 많이 다르지는 않다고 봅니다. 아베는 고이즈미 내각에서 관방 장관을 지내면서 고이즈미 정부의 대북 정책을 입안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고이즈미의 대북정책과 차별성도 분명히 있어요. 일본인 납치 문제나 인권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한 예입니다. 또 고이즈미는 일본-북한 간 수교 협상에 많은 관심이 있었지만 아베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지난해 6월 부시를 만났을 때 북한과 양자 대화를 하라고 끈질기게 촉구했지만 실패했어요. 둘 사이의 공통점은 미국이 동아시아 정책을 중국에'아웃소싱'해서 결과적으로 중국에 너무 많은 힘을 실어 주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입니다.

김=중국이 동아시아에서 강대국으로 급속히 부상하는 데 대한 우려와 경계가 특히 동북아 지역에서 널리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 지역에서 중국과 영향력을 나눠 갖는 상황을 감수할 수 있을까요.

오버도퍼=중국 관련 최근의 뉴스는 매우 긍정적입니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중국의 노력은 중국의 외교 정책을 새로운 단계에 올려 놨어요. 이 노력은 북한이 1993년 처음 영변에서 플루토늄 생산을 시도하면서 시작됐어요. 중국에서 공산당이 집권한 이후 처음으로 중국이 국제 사회에서 책임감 있게 행동해 전 세계적인 문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 거죠. 중국은 6자 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그리고 미국과 북한을 설득하는 데 그 어느 때보다 큰 책임을 다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그러나 중국의 태도가 외부에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성숙해졌다는 점이 중요해요. 중국은 미국에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반사회적인 행동을 해서 이웃 국가들을 공포에 떨게 하지도 않을 겁니다. 중국은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커가고 있지만 모든 조짐을 볼 때 자신이 가진 힘을 책임감 있게 사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중국이 위협이 되지 않을 거란 말에 동의합니다. 위협으로 생각하면 진짜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불신과 의심, 책임 추궁의 악순환을 초래할 뿐입니다. 중국을 진정으로 파트너로 대한다면 중국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버도퍼=미국과 중국은 서로 상대방을 화나게 하거나 자극하지 않게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를 실망시킨 중국의 일부 외교 정책은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가 그 주요 원인입니다. 빠르게 발전하는 경제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외교 정책 전반의 방향은 매우 좋아요. 후나바시 박사가 얘기한 대로 6자회담에서 공산 국가인 중국이 오히려 실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고 비공산국가인 다른 나라들이 오히려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한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죠.

김=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문제로 빅딜을 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문=미국과 중국 간의 빅딜이라면 북한의 김정일을 제거하고 북한을 사실상 중국의 통제와 영향력 하에 두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중국이 레바논에서 시리아 같은 역할, 사실상 중국이 북한을 신탁통치하도록 허용한다는 논의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럴 가능성은 매우 작습니다. 첫째는 북한 정권이 그정도로 취약하지 않고, 둘째는 한국이 북한 정권이 그렇게 붕괴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도 미국이 그렇게 하라고 설득해도 그런 역할을 원치 않을 겁니다.

김=러시아가 과거 소련이 누렸던 지위를 회복할 가능성은 얼마나 큽니까.

후나바시=러시아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과거보다는 강력해졌지만 쇠락하는 추세를 근본적으로 뒤집기는 힘들다고 봐요. 과거 소련이 했던 것만큼의 역할을 하진 못할 겁니다. 북핵 문제에서도 두드러진 역할을 못하고 있잖아요. 북한이 중국과 힘의 균형을 맞추는 정도에서 러시아를 활용하려고 할 뿐입니다.

김=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동북아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후나바시=북핵 사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어요.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중국에 '아웃소싱'할 수밖에 없을 만큼 미국의 손발이 이라크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한국과 중국이 다자간 협상 채널을 가동시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취약함을 보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어요.

김=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최지영.박현영 기자

문정인은

문정인(55)=연세대 정치학과 교수로, 현재 대통령자문 국방발전자문위원 겸 외교부 국제안보대사로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2003년에는 노 대통령 당선자의 방미 특사단원을 지냈고, 2004~2005년엔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켄터키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돈 오버도퍼는

돈 오버도퍼(75)=워싱턴 포스트 외교 전문기자 출신으로 한반도 전문가다. 현재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교수이자 이곳에 개설된 미.한 연구소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1952년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뒤 육군 중위로 주한미군(1953~55)에서 근무했다. 저서로는 '두 개의 코리아(The Two Koreas)', '냉전에서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 등이 있다.

후나바시 요이치는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61)=일본 아사히(朝日)신문 칼럼니스트이며 외교문제 대기자다. 1980~90년대 아사히신문의 베이징.워싱턴 특파원을 지냈으며, 게이오(慶應)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미.일 외교를 다룬 '표류하는 동맹', 북핵 6자회담 비화를 담은 '페닌슐러 퀘스천(한반도 문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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