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트·너트 발사 '경찰 잡는' 새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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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9일 민주노총의 도심 집회에서 '새총'이 시위대의 신종 무기로 등장, 일선 경찰에 경계령이 내려졌다. 대부분 두 쇠막대를 테이프로 묶어 고무줄을 매단 수제품(手製品)으로 길이가 10~15㎝ 정도다. 단순한 형태지만 기능공들이 만들어 굉장히 튼튼하다. '탄환'은 볼트나 너트 등이다.

이날 시위에선 일부 노동자들이 이 같은 새총을 발사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그동안 지방집회에서는 새총이 종종 목격됐지만 서울 도심 집회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9일 밤 민주노총의 서울 도심 시위 도중 한 노동자(점선 원 안)가 경찰을 향해 새총을 쏘고 있다. [SBS 촬영]

경찰이 시위현장에서 새총을 수거해 '화력'을 테스트한 결과 1m 앞에서 발사한 너트가 두꺼운 골판지 두장을 가볍게 뚫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정도 위력이면 20~30m 밖에서 쏴도 눈 부위에 맞으면 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볼트.너트의 크기가 작아 각종 보호장비의 틈새를 뚫고 들어올 가능성도 위협 요소다. 야간에는 더욱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새총이 시위 도구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 광주.전남지역 대학생 시위에서다. 당시엔 주로 철근 조각을 '탄환'으로 사용했다. 90년대 초반에는 현대중공업.대우조선 등 파업 시위 현장에서 베어링을 발사하는 새총이 등장해 진압경찰을 괴롭혔다.

서울 종로경찰서 이길범(李吉範)서장은 "요즘도 볼트.너트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금속노련 노조원들이 주로 새총을 쓴다"며 "경찰 입장에선 눈에 보이는 돌보다 안 보이는 볼트.너트가 훨씬 위험한 존재"라고 말했다.

지난 8월 화물연대 운송거부 때 업무복귀 차량의 유리창을 깨뜨렸던 정체불명의 '탄환'도 새총으로 발사됐을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사진채증 등을 통해 9일 집회에서 새총을 쏜 노동자의 신원파악에 나섰다. 새총으로 경찰에 부상을 입힐 경우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상 혐의로 입건한다는 방침이다.

경찰은 지난 6일 전주에서 경찰에 볼트 새총을 쏘고 유리병을 던지는 등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민주노총 전북본부장 직무대행 조모(38)씨 등 2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그러나 새총과 볼트.너트 등은 손쉽게 숨길 수 있어 사전 검문.검색으로도 적발하기 힘들다는 게 경찰의 고민이다.

실제로 9일 시위 현장에서 연행한 한 노동자의 주머니 속에 너트가 한움큼 들어있는 것을 경찰이 압수하기도 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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