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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장관 후퇴가 전기되려면(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노태우 대통령이 처고종이자 사조직 관리자인 박철언 체육청소년장관에게 대권경쟁 포기선언을 하게 하고 처남인 김복동씨를 군출신배제 원칙을 적용해 제동을 건 것은 집권후반기를 맞고 있는 시점에서 주목할만한 사태발전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불신이 날로 더해가고 집권 민자당의 내부경쟁을 의문투성이로 보는 국민입장에서 보면 노대통령의 조치는 일단 새로운 지향성을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의중과 새로운 상황전개가 의미있는 진전으로 국민이 받아들이고 정치의 질을 높이는 출발점이 되기 위해서는 잇따라 해답을 내놓아야 할 문제들이 적지 않다.
우선 노대통령의 박장관 퇴진결정을 액면 그대로 보지 않는 시각이 만만치 않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박장관이 일시 후퇴했느냐,아니면 후계그룹에서 완전히 함몰했느냐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전국구 초선의원인 박장관을 민자당내 대파벌의 보스로 급성장시킨 것은 다름 아닌 노대통령 자신이었다. 대통령선거때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관리해 왔을 뿐이라고 하지만 단임으로 끝날 대통령이자 공당의 총재가 사조직을 온존시키고 그로 인해 공조직을 거의 헛돌게 한 것은 그 의도를 순수하게 해석하기 힘들다.
사실 그동안 박장관과 월계수회로 인해 정부와 민자당내에는 여러가지 기현상들이 벌어졌었다. 정부안에는 「떠오르는 태양」을 의식한 인사와 정책결정의 혼선이 있었고,월계수회란 존재자체가 민자당 내홍의 진원이었을 때가 비일비재했다.
따라서 우리는 작년 4월 김영삼씨와의 갈등에 잠시 후퇴시켰다가 다시 박장관을 정치전면에 복귀시켰던 전례를 유의하면서 금후를 지켜보고자 한다. 부연컨대 노대통령이 진실로 개인관계를 기준으로 하는 정치에서 합리가 기준이 되는 정치로 업적을 쌓으려면 차제에 월계수회를 해체하거나 명실상부한 민자당의 공조직으로 흡수하는 후속조치를 취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그렇지 않고 오는 7,8월쯤 대권후보의 조기 가시화를 요구하며 도전해올 것으로 예상되는 김영삼 대표의 공세빌미를 미리 제거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일보후퇴를 겨냥한 것이라면 대통령 개인과 정치적 리더십의 공신력 실추로 이어질 공산이 높다.
광역의회 선거가 끝나면 후계지명을 놓고 노대통령과 한판 승부를 하겠다고 공언해온 김영삼 대표가 박장관 배제의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대응할지 여부 또한 초미의 관심사다.
우리는 김대표의 선택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93년 대권후보를 겨냥한 김대표의 결의가 논리와 절차를 무시한 전부냐 전무냐의 막다른 결전으로 줄달음치지 않고 정상적인 세확대와 정치적 절충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어쨌든 민자당은 이제 계파의 이해를 떠나 사태의 미봉이나 연장을 뛰어넘는 진지한 고민과 대화를 통해 자유경선등 정정당당한 경쟁방식을 찾아내야 할때가 왔다.
민자당은 창당후 줄곧 변칙적 파워게임을 해온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 정치인이 차지하는 「신뢰의 바탕」은 점점 좁아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기존 정당이 여야 모두 합쳐도 30∼35%의 지지밖에 못얻는 형국에 이르렀고 소위 물갈이론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박장관 퇴진이 당내 민주주의 정착의 출발점이 되어 새로운 경쟁방식을 도출하는 정치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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