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김천·부산 문학|유·불 어우러진 "시조의 고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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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추풍령 아래 첫 고을 김천시와 인근의 금릉군·선산군. 예부터 이 고장은 많은 인재를 배출, 추풍령 너머 한양으로 보냈다.
서쪽에 황학산, 남쪽에 고성산, 동쪽에 금오산으로 둘러싸여 감천과 직지천이 흐르는 삼산이수의 고을 김천은 그 지명처럼 물이 맑은 도시. 이 두 내는 선산에서 낙동강으로 합류하며「한해 농사로 평생 먹고 살 수 있다」는 기름진 평야를 형성, 이 고장의 문물을 살찌게 했다.
신라에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이 418년 창건한 직지사를 황학산 기슭에 갖고 있는 이 고장은 신라 불교의 발상지이면서도 조선시대 수많은 유학자를 배출, 영남학파의 고장이 되게 하기도 했다.
길재는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 위해 향리에 내려와 강호·김숙자 같은 제자를 배출, 영남사림의 터를 잡게 했다. 단종을 애도한「조의제문」으로 부관참시를 당한 김종직은 김숙자의 아들이고, 또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새남터에서 처형된 사육신의 한사람 하위지도 이곳 태생이다.
때문에 이 고장은 절의와 명분을 중시하는 영남학파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으며, 특히 시문과 고전에 밝은 학자 조위를 배출, 문향으로 일컬어진다.
김천은 조위의 문명을 기리는 문화제를, 선산은 하위지의 절의를 기리는 문화제를 개최하며 그들의 뜻을 후손들에게 전하고 있다.
추풍령 너머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로서, 또 기름진 들녘으로서 영화를 누렸던 이 지역은 그러나 교통의 요충지가 오히려 더 큰 도시로 지역의 인재를 유출시킨 역작용으로, 또 선산에서 떨어져간 구미시의 위세에 눌려 더 이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정체되고 있다.
경부선과 경북선의 개통으로 경북 서북부의 거점 도시로 성장했던 김천은 일제시대부터 문단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925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이 결성되면서 경향 각지에서 프로문학이 활발해지자 김태은을 중심으로 김천지역 문인들은 동인「흑조」를 결성, 프린트판 동인지를 내며 시와 수필을 발표했다.
20년대 김천의 문단태동기에 이어 1930년 이 지방 최초의 활자본 동인지『무명탄』이 창간돼 동인으로 진록성 김갑연 성효영 우동전 이완기 송소민 김태은씨 등이 활동했으나 창간호로 끝맺음됐다. 한편 민동선은 시조, 최목랑은 시를 발표하며 일제하 김천문학의 맥을 이었다.
해방후인 1947년 김상갑 임성길 김도오 등이 주축이 돼 결성한「오동시문학구악부」는 뒤에 전택근 여석기 권오기 김성근 최목랑 배범찬 정완영이 가담, 동인지『오동』을 2집까지 내며 활동하다 6·25로 해체됐다.
6·25중인 1952년 김천에서 병원을 경영하던 강중구는「김천문화의 집」을 개설, 김천문화의 산실이 되게 했다. 이「김천문화의 집」산하에 문학부분을 둬 55년부터 78년까지 동인지『소문화』를 발행하며 김천지역 문인들의 발표의 장 구실을 했다. 한편 권태을 백남해 박찬선 최덕하 정두수 성백진 등 김천고 출신들은 1958년「벽파 동인회」를 결성, 매년 시낭송회 등을 가지며 3년간 활동했다.
1959년 김천문인들을 총망라한「흑맥문학회」가 창립되며 김천은 문학적으로 개화기를 맞는다. 홍성문 윤사섭 김기환 정수봉 박용설 배범창 정완영 강정문 권태을 김상문 김상훈 김수기 백남해 강숙자 최참수 이금숙 등과 상주의 신현득 김종상 권태문 정재호 등까지 어우르는「흑맥문학회」는 문학의 밤. 시화전 등을 개최하는가 하면 동인지도 매년 발간하는 활동에 힘입어 동인들을 속속 중앙문단에 데뷔시켰다.
한편 나홍연 김동일 김지월 홍유평 문경연 진죽자 등 김천 청년문학도들은 62년「맥동동인회」를 결성, 지역문예지『소문화』를 발판으로 활동했다. 또 홍성문 이민영 김기환 설기환 최홍구 등 시인들도 65년 시동인「벽과 눈」동인회를 결성, 동인지를 2집까지 냈었다.
70년대 접어들면서 김천문단은 시조동인「향목회」, 종합동인「김천문지회」, 시·시조동인「김천시문학회」등에 의해 주도된다.
특히 시조시인 정완영 강정문 이경안 조오현 등과 동호인으로 조직된「향목회」는 정완영이 동인들의 창작지도와 화목을 주도하면서 김천을 현대시조의 고장으로 가꿨다.
「흑맥문학회」의 뒤를 이어 74년 창립된「김천문지회」는 80년「김천문학회」로, 88년「한국문협김천지부」로 발전된 범김천문인조직. 현재 김천문협은 회장 강범우씨를 비롯, 전 장르에 걸쳐 18명의 기성문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기성문인과는 별도로 육봉수 조인호 박순자 등 시문학 청년들은 85년「파지문학회」를 결성, 시 낭송회·시화전과 함께 매년 동인지『시파지』를 내며 활동하고 있다.
김천은 전통적으로 고교문학 활동이 강한게 특징. 김천고의「맥향」을 비롯, 각 고교마다 문예반 이외의 문학서클이 있으며 이들의 연합문우회인「시애」까지 있어 이들 문학청년들을 어떻게 이끄느냐가 김천문단의 과제. 김천문협은 이를 위해 청소년백일장을 신설, 문학적 인재를 발굴해나갈 예정이다.
인구 8만의 소도시로서 문인 40여명을 배출한 김천은 또 출향문인과 향토문인을 망라한 향토문학후원회를 결성, 작품교류를 통해 문향으로서의 김천의 명성을 지켜나갈 예정이다.
한편 작년 4월 경북도내 군단위로서는 최초로 문협을 결성한 선산의 문단활동은 84년「선주문학회」가 결성되면서 시작됐다. 여영택 윤종철 김원호 이병만 최봉섭 정일섭 등 6명으로 출범한「선주문학회」는 그 동안 동인지『선주문학』을 10집까지 내고, 월례합평회·시화전·문학강연회 등을 가지며 회원들의 자질향상에 힘쓰는 한편 군내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한「단계백일장」을 주최, 향토문학의 저변확대에도 힘썼다.
한편「선주문학회」는 주부수필모임인「글벗단계천」을 88년 결성, 주부들의 독서와 수필장작을 지도하기도 했다. 이「선주문학회」와「글벗단계천」이 90년 통합, 선산문협을 결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현재 선산문협은 회장 윤종철씨를 비롯, 전 장르에 걸쳐 25명이 참여하고 있다.
인근 구미시에 밀려 쇠락해 가는 이 지역에도 불구, 문향·인재의 고장이라는 영예를 지켜내려는데 지역문인들이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김천=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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