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외교관 40여 명 구조조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외교통상부 소속의 고위직 외교관에 대해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외교부는 26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인력구조 개선방안을 확정했다. 본부 국장과 해외공관 공사급 이상의 고위직 인사적체를 해소하고 실무인력을 충원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 방안대로 가면 내년 상반기까지 고위직 40여 명이 명예퇴직 등을 통해 정리된다.

외교부 관계자는 "송민순 장관이 취임 뒤 한 달여 만에 구조조정의 악역을 떠맡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외무고시 9기인 송 장관보다 선배인 기수(6~8기)들이 집중적으로 명예퇴직 대상에 오르고 있어 연말 분위기는 흉흉하다. 이는 고위직 외교관 숫자가 관련 규정(현재 211명)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공관장을 두 차례 지내고 정년(60세)이 1~2년 남은 외교관들은 우선적인 명퇴 대상에 올라 좌불안석을 실감하고 있다. 50대 후반의 한 외교관은 "단계적인 연착륙을 시도해야지 일방적으로 해서야 되겠느냐"고 토로했다.

외교부는 그동안 고위직들에게 정년을 보장해 주기 위해 갖가지 묘안을 짜냈다. ▶본부 대사 ▶지방자치단체 자문대사 ▶대학 겸임교수 등의 '인공위성' 같은 보직을 줬다. 심지어 해외공관 인력의 8%를 본부 인력 정원으로 끌어다 활용하는 편법까지 동원했다.

그 결과 고위직 정원 초과 숫자는 2~3년 새 40여 명으로 불어났다. 외교부 관계자는 "현 정부 출범 시 5~7명 수준이던 비(非)외교관 공관장 수가 21명(전체 공관 수는 137개)으로 늘어난 데다 반기문 전 장관이 고위직 퇴직 압박을 기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송 장관 취임 뒤 상황이 급변했다. 송 장관 스스로 능력 위주 인사를 강조하고, 행정자치부 출신의 김호영 제2차관이 외교부 인사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김 차관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정부혁신 관련 실적을 인정받아 외교부차관으로 발탁됐다. 젊은 외교관들은 환영 반, 우려 반의 표정이다. 한 직원은 "고위직이 줄어드는 대신 실무인력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한 것 같다"며 "그러나 법으로 정한 정년을 무시하면 우리도 언젠가 피해를 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설상가상 격으로 내년 초 공관장 인사에서 비외교관 출신 공관장이 20명가량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럴 경우 고위직 외교관의 자리는 더 줄어든다. 외교부 관계자들은 "노무현 정부의 '코드 인사'를 외교부에까지 적용하기 위한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하지만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자격과 능력을 갖추었다고 판단되는 외부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받을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