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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살된 「경제포도청」/최수병 공정거래위원장(일요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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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법지킬 생각없는 기업에 본때”/독과점·하도급 횡포 꼭 막을 것/이해얽혀 사람 만나기도 조심
「경제포도청」으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족 10돌을 맞았다. 88년 3월 6공화국 출범이후 3년이 넘게 줄곧 포도대장을 맡고 있는 최수병 위원장(52). 『많은 성과도 거두었지만 아직은 미흡하다』고 표현,앞으로 공정거래위의 업무가 불공정행위의 적발·시정 뿐만 아니라 예방차원의 일도 병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공정거래제도가 시행된지 4월1일로 10년입니다. 그 공과를 평하신다면.
『이제 뿌리를 깊숙히 내리고 터전을 잡았다고 할까요. 그 줄기와 가지를 제대로 키워 자유시장 경제질서가 경제헌법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토록 해야지요. 선진국에 비해 짧은 역사지만 사기세일·변칙 할인판매 등과 같은 불공정행위 규제,대기업의 하도급업체에 대한 횡포단속등을 통해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은 못됩니다.』
­그러나 아직도 공정거래제도가 생소하며 어렵다고들 합니다.
『공정거래제도는 운동경기 규칙이나 교통법규 같은 것입니다. 불과 20년전만 해도 치약하면 딱 한 회사제품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때는 가격이 올라도,질이 떨어져도 그 제품을 쓸 수 밖에 없었는데 여러 업체가 생겨나 경쟁이 붙은 요즘은 경쟁사나 수입품에 고객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원가를 절감해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높여야 합니다. 소비자입장에서 보면 좋은 품질의 치약을 합리적인 가격에,선택해서 살 수 있게 됐습니다. 공정거래제도(법)는 바로 이런 상태를 만들어 국민 모두에게 혜택을 주고 국가경제도 발전시키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합니다.』
­일부에선 공정거래제도가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며 자율적인 경영을 방해한다고 말합니다.
『올바른 기업은 공정거래제도를 부담스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법을 지킬 생각이 별로 없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납품·하청업체에 대금을 지급할 때 60일 이내에 결제해 주도록 되었는데도 5∼6개월짜리 어음을 끊어주는게 예사입니다. 정당한 사유도 없이 납품받기를 거절하고 물품에 대한 검수를 지연시켜 골탕을 먹입니다. 그럼에도 피해업체는 보복이 두려워 신고도 못합니다. 그래서 공정거래제도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려면 공정거래위가 제보·제소에만 의존하지 말고 수시로 직권조사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또 이런 직권조사라야 예방기능도 있다는 것이지요.』
­단속·제재도 필요하겠지만 사전에 이같은 불공정행위를 예방하는 것도 중요할텐데요.
『그렇습니다. 불공정행위의 예방책으로 하도급 거래가 많은 자동차·전자·조선업계에 표준계약서를 쓰도록 할 계획입니다. 이웃 일본은 1백33개나 되는데도 우리는 고작 9개뿐인 업종간 자율경쟁규약도 스스로 더 만들도록 권장할 방침입니다. 독과점업체의 횡포를 막기 위한 지침서도 만들어 배포하겠습니다. 또 이런 것들을 잘 지키는 업체는 공정거래수범업체로 선정,포상하고 세무조사를 일정기간 면제해주는 등의 실질적인 혜택도 주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지키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또 최근 민주화분위기 속에서 상습위반자가 늘고 있으며,공정거래위를 상대로 맞고소하는 경우도 생겨났는데 대책이 있습니까.
『그전에는 시정명령보다 신문에 사과광고 내는 것을 그렇게 무서워했는데 요즘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곳도 있는 것 같아요. 시정명령에 불복,행정소송을 내는거야 이해되지만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내렸는데도 따르지 않는 것은 곤란하지요.』(최위원장은 이 부분에서 파스퇴르유업의 허위·비방·과장광고 사례를 예로 들며 자기상품 선전하면서 왜 자꾸 남의 상품을 헐뜯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아무래도 기업을 상대로 혼내주는 입장이라서 처신하기 곤란할 때도 있을텐데요.
『물론 일부 오해와 시비도 있을 수 있습니다. 파스퇴르유업의 허위·비방광고에 대한 제재와 관련해 그 기업으로부터 욕도 먹었지요. 백화점 사기세일사건때는 처음에 고발하지 않았다고 해서 오해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기업의 따가운 눈총이 의식되지요. 조금이라도 처신을 잘못했다간 「불공정」으로 찍히기 십상입니다. 따라서 사무실에서 외부인사를 만날 때나 밖에서도 모든 면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동안 위원회의 활동이 허위·비방광고 행위·백화점 사기세일 등에 대한 규제등 일반인들에게 가시적으로 비춰질 개별기업의 「행위규제」에 치중돼 왔는데 경제질서를 구조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제재는 적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경제력집중 억제는 공정거래법만으로는 소기의 목적달성이 어렵다고 봅니다. 세제·금융(여신관리제도)·중소기업 육성방안 등이 한데 어우러져야 합니다. 앞으로 적극적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봅니다.』
­미국이 현재 일본에 요구하는 것처럼 앞으로 자국기업들의 한국내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규제를 없애달라는 등 구체적인 요구가 있을텐데요. 대외시장 개방과 관련된 공정거래제도 운용방향은 어떤 것입니까.
『우선 미·일·유럽공동체(EC) 등의 공정거래위와 업무협력체계를 돈독히 하고 정보를 교환해야지요. 그러나 또한 외국기업들의 불공정행위를 막기 위해 외국기업들이 흔히 저지르는 행위에 대한 지침서를 만들어 위법내용을 명시하는등 대비책을 세워나갈 것입니다.』
­민간부문의 경쟁촉진도 중요하지만 정부규제도 완화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특히 신규 시장진출업체에 대한 인·허가관련 규제는 과감히 풀어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유통부문등 국민생활과 물가에 관련된 산업의 정부규제 완화도 추진하겠습니다.』
­3년여에 걸친 「경제 포도대장」생활은 어떻습니까.
『자본주의 역사가 짧은 탓도 있겠지만 우리 인식과 태도가 아직 경쟁적이질 못하다는 게 많은 불공정거래의 출발점입니다.
기업은 모름지기 힘·돈이 아닌 가격·질·서비스로 경쟁을 해야지요. 정부·기업·소비자 모두가 경쟁에 관한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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