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 파는 할머니|고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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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오랜만에 뜨락 가득 쏟아지는 3월의 햇살을 받고 있자니 문득 어릴 적 이맘때면 어머님께서 끓여주시던 냉이국 생각이 떠올랐다.
겨울동안 깊숙히 넣어두었던 오토바이를 꺼내 타고 시장에 들어서니 벌써 시장 곳곳엔 갓배추와 냉이가 보기만해도 입맛이 날만큼 수북수북 쌓여 있었다.
몇군데 둘러 냉이·배추, 그리고 물미역을 사들고 막 시장을 빠져 나오려다가 약국 앞 노점상에 쪼그리고 앉아 냉이를 팔고 계신 할머니 한분을 보았다.
가까이 다가서는 나를 어느새 할머니께서 먼저 알아 보시고 『아휴 애기 엄마, 오랜만이구만. 그동안 어째서 한번도 시장에 안나왔수』하며 딸을 만난 것처렴 반가워하셨다.
내가 할머니와 인연이 된 것은 지난해 여름부터였다.
식당을 하다보니 시장에 자주 나가게 되었고 미나리가 필요해 이곳 저곳을 들르다 마침 미나리를 팔고 계신 할머니릍 만나게 되었다.
할머니께서 팔고 계신 미나리는 논둑에서 뜯어온 미나리여서 향기가 좋고 가격도 훨씬 쌌다.
그날로 나는 할머니의 단골이 되어 다른 곳에 더 좋은 미나리가 있어도 늘 할머니를 찾곤했다.
나중에 알계된 사실이었지만 할머니꼐서는 아들 대신 손자들의 공부 뒷바라지를 하시느라 그 추운 겨울에도 장날만 되면 한번도 거르지 않고 시장에 나오신다는 것이다.
그날도 난 다른 곳에서 이미 냉이를 샀지만 할머니한테서 한무더기를 더 사고 『할머니 다음 장날엔 많이 팔아드릴께요』하며 인사를 하고 돌아섰지만 왠지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청평3리 오대골 청기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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