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뜨니 지지율도 뜨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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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한 번 꼭 해야 합니다."

25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 쪽방촌을 찾은 고건 전 국무총리의 귀에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에워싼 동네 주민과 노숙자 30여 명 중 한 사람이 외친 소리였다. 고 전 총리를 '각하'로 표현했고, '한 번 해야 한다'는 건 대선에서 승자가 되라는 뜻이었다.

고 전 총리의 손을 꼭 쥐며 "반갑다"거나 "어려운 때 좋은 일을 많이 해달라"는 격려도 많았다. 고 전 총리의 공보팀장역을 하는 민영삼씨는 "요즘 분위기 좋아졌다"고 전했다. 지지율이 오르는 기미라고 한다.

21일 노무현 대통령이 "고 전 총리의 기용은 결국 실패한 인사였다"고 발언, 양측 간 충돌사태가 벌어진 이후 달라진 풍경이다. 고 전 총리의 캠프는 활기가 넘쳤다. 고 전 총리가 노 대통령과 일진일퇴 공방을 하면서 얻은 건 뭐고, 잃은 건 뭘까.

◆ "노 대통령 공격이 지지도 상승의 계기"=23일 고 전 총리가 참여한 서울 월드컵공원의 걷기 행사엔 지지자 5000여 명이 모였다. 한 측근은 "당초 1000여 명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우리도 놀랐다"며 "노 대통령과의 공방 이후 지지자 결집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 댓글도 늘고 내용도 우호적"이라고 전했다.

고 전 총리는 사실 지난해 말 이후 여론조사상 지지도가 2위 또는 3위로 밀렸지만 딱히 반전시킬 계기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노 대통령의 돌발적인 공격으로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는 게 주위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주변에선 "고 전 총리는 운이 좋은 사람"이란 얘기마저 나온다.

캠프에선 우선 국민이 고 전 총리의 진가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노 대통령과 다른 국정운영 자질과 경륜이 돋보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여론조사기관인 디오피니언 안부근 소장은 "노 대통령의 공격에 고 전 총리가 점잖게 대응했다"며 "여론조사 전문가들 사이에 지지도가 올라간다고 보는 사람이 대다수"라고 분석했다. 캠프는 또 여권의 정계개편 논의에서 고 전 총리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란 기대도 하고 있다. 여권 내에서 '반(反)노무현' 기류가 강해지는 것과 맞물리면서다. 김덕봉 공보특보는 "정치적 연대가 빨라질 것이란 얘기가 외부에서 들려온다"고 전했다.

◆ "무능 총리란 낙인 찍히지 않을까"=그러나 노 대통령의 '고 전 총리=무능력'이란 발언이 국민의 뇌리에 낙인 찍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에서 "고 전 총리는 회의만 하면서 시간을 보낸 '위원회 총리'였다"고 주장한 데 대해 고 전 총리 측이 2004년 총리실의 보도자료를 공개하며 반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권의 지지층이 호남과 진보그룹이란 점도 걱정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김헌태 소장은 "이런 특성 때문에 노 대통령과 각을 세운다고 대폭 상승을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호남 이외에 뚜렷한 지지기반을 갖지 못한 그로선 더욱 그렇다. 특히 노 대통령의 열성 지지그룹과 등을 돌리는 게 부담이다. 무엇보다 고 전 총리가 느끼는 가장 큰 고민은 이번 충돌 과정에서 확인된 현직 대통령의 의사다. 노 대통령은 최근 사석에서 "여당 후보로 고건씨가 간다면 내가 나서서라도 막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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