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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민주화의 시금석/31일 사상처음 실시되는 다당제 자유총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정부 못믿어 국외탈출 러시/보수­개혁 틈바구니서 난항
동유럽의 마지막 남은 스탈린주의국가 알바니아가 드디어 오는 31일 사상 최초로 다당제 자유총선을 실시한다.
총 2백50명 인민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엔 집권당인 알바니아노동당(공산당)을 비롯,민주당·공화당·농민당·환경당 등 야당들이 참가한다.
현지 관측통들은 대부분 노동당이 과반수 의석 획득에 성공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개중엔 민주·공화 두야당이 합쳐 과반수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도 있다. 알바니아 야당들은 불과 3개월전 창당이 허용됨으로써 아직 전례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자유총선은 지난해 봄부터 시작된 알바니아의 개방·개혁정책이 바야흐로 본격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동유럽국가중 가장 완강하게 정통 사회주의 노선을 고집해온 알바니아는 85년 독재자 엔베르 호자가 사망하고 그 후계자로 라미즈 알리아 현 인민의회 간부회의장이 등장하면서 극히 느린 속도로 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동안 알리아의 개혁정책은 그나마도 호자의 노선고수를 주장하는 보수파들에 밀려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89년이후 민주화혁명의 폭풍이 동유럽 전체를 휩쓸면서 알바니아도 더이상 고립노선을 고집할 수 없게 됐다.
알리아의장은 지난해 4월 알바니아의 대외개방을 선언하고 미국등 서방국가들과 국교를 재개하는 한편 유럽국가들중 알바니아만이 유일하게 불참하고 있던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도 참가할 의사를 분명히 했다.
국내적으론 언론·집회의 자유를 허용하고 야당설립을 인정하는 한편 시장경제체제로의 점진적 이행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알리아의장은 특히 지난해말 그동안 자신의 개혁정책을 방해해온 호자의 미망인 네지미에 인민전선의장,스테파니 내무장관,미푸티우 부총리,마르코 인민의회간부회부의장 등 「강경보수파 4인방」을 제거,자신의 입지를 강화했다.
올해 들어선 지난달 아딜 카르카니총리가 이끄는 보수내각을 퇴진시키고,30대후반의 신진경제학자 파토스 나노를 신임총리로 임명했다.
나노총리는 시장경제체제의 신봉자로 시장경제이행·외국자본유치 등 경제개방을 선언해 놓고 있다.
그러나 알리아정권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46년간의 강압적 공산통치에서 공포와 기아에 시달려온 알바니아 국민들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국외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수도 티라나시내 외국공관 난입사건이후 이달초 2만여명의 알바니아인들이 이웃 이탈리아·유고로 집단 탈출한 사건까지 세차례의 집단 탈출사태가 일어났으며,지금도 소규모 주민탈출이 국경지역에서 계속 되고 있다.
알바니아의 경제현실은 참담한 상태로 1인당 GNP 9백달러내외의 유럽 최빈국에 머물러 있다. 제2차대전후 호자의 공산정권이 철저한 자급자족 경제정책을 추구한 결과 산업시설은 전근대적 상태이며 주민들은 만성적인 물자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알바니아 국민들은 정부의 민주화개혁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는 인내를 거의 상실한 상태이며 집단탈출이라는 일종의 패닉(공황)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지적돼야할 것은 알바니아 국부인 고호자의 권위에 대한 알바니아 국민들의 부정이다. 지난달 20일 티라나에서 10만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호자의 동상을 넘어뜨리고 모욕을 가한 사건은 그동안 신격화해 온 호자의 권위가 이제 땅에 떨어졌음을 나타내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호자에 대한 부정은 그 후계작인 알리아의장이 이끄는 알바니아 현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보수파들은 이날 사건을 계기로 알리아의 개혁정책에 대한 반기를 들기 시작했으며,야당과 반정부세력들은 더욱 본격적인 개혁을 요구하고있다.
이번 자유총선은 보수와 개혁의 양틈바구니에서 완만한 개혁정책을 밀고 나가려는 알리아정권이 앞으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개혁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지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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