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머니… 민중미술가가 불러낸 그리운 그 얼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통일문제연구소 안방에서 신학철 화백(左)과 백기완 소장이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성룡 기자


서울 혜화동 통일문제연구소 안방이 '반짝 미술관'이 됐다. 신학철(64) 화백이 들고 온 스물여섯 점의 그림이 사방에 자리를 잡고 들어섰다. 관객은 신 화백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뿐. 그러나 방에는 그 어느 때보다 훈훈한 기운이 감돈다.

"그냥 책에 들어갈 삽화용 그림인데…."

신 화백의 말은 겸손에 불과했다. 동산에 올라 떠나는 가족을 보며 넋이 빠진 어머니, 배가 고프다며 칭얼대는 아이에게 무꼬리를 깎아 먹이는 어머니, 추운 겨울 피새우를 잡으러 맨살로 개울에 들어가는 어머니…. 그림 속 어머니의 모습은 남 같지 않았다. 포근하고, 정겹고, 애잔하고, 때론 슬펐다.

1980년대 이후 민중미술가로 이름을 떨친 신 화백이 우리 어머니를 화폭에 담았다. '모내기'등 통일과 민족을 소재로 그림을 그려 온 그로서는 뜻밖의 작업이다. 신 화백은 "백 선생님 부탁이 아니면 그리지도 않았을 거예요"라며 쑥스러워 했다.

신 화백은 지난 3년간 붓을 놓다시피 했다. 몸이 아픈 아내를 돌보느라 짬을 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백 소장의 책 '부심이의 엄마생각'에 표지 그림을 그려달라는 청을 뿌리칠 수 없어 붓을 들었다. 고추를 드러낸 채 엿을 먹겠다고 우는 사내아이 그림은 그렇게 나왔다. 백소장은 책 속에 들어갈 그림을 추가로 부탁했고, 방 안 가득 채운 그림들은 그 결과물이다.

사실 이 그림은 1950년대를 전후해 가난하고 못살던 시대의 이야기다. 엿을 먹기 위해 아이가 시장을 방황하는 모습이나 어머니가 부엌에서 바가지 속 음식을 먹는 모습이 그렇다. 그러나 그 속에 흐르는 정신, 자식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오늘날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림을 보곤 우리 어머니가 날 다시 만나러 온 거 같은 느낌을 받았지. 하지만 자꾸자꾸 보면 누구나의 어머니가 되는 것 같아."

백 소장은 이 그림들을 전시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러나 아직 전시할 장소를 찾지 못했다. 예산이 없어서다.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표현하는 건 신 화백이 아니면 못할 일"이라며 "어서 자리를 마련해야 할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박지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