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와 정전위 수석 교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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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의 한국군장성 보임은 남북간의 군사­정치관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것은 지난해 시작된 양측 총리를 수석으로 한 고위급회담과도 맞물려 상호 군사긴장상태 완화에 결정적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미국장성과 북한장성을 수석대표로한 판문점 정전회담장은 휴전이후 38년동안 설전장으로 일관돼왔다. 억지에 가까운 평행선 논리가 복잡한 통역절차를 거치면서 평화구축을 위한 노력보다는 서로가 헐뜯는 비방의 감정만 교환해온 셈이다.
휴전의 실질적 당사자는 남북한이면서 회담장은 미군과 북한군대표가 주재하는 기형적인 행태를 계속해온 것이다. 판문점을 제외한 휴전선 전지역에서 마주보고 있는 남북한 군대는 공식적인 대화통로마저 갖지 못했다. 물론 그동안에도 한국군 장성이 차석대표로 회담에 참석하기는 했지만 단한마디 발언의 기회도 갖지 못하는 대표였다. 자연 회담장은 속마음을 감춘 공허한 논박만 일삼는 가장 비경제적인 회의로 시종해온 것이다.
한국측으로 보면 이는 6.25때 유엔군에 넘겨준 작전통제권과 함께 군사적 자주성이란 측면에서 가장 아픈 상처이기도 했다. 53년당시 휴전에 동의하지 않은 정부방침에 따라 전쟁의 주역이면서 협정에 서명하지 않는 결과였다. 이번 수석대표의 한국장성보임은 그런 이유를 들어 북한측에서는 일단 거부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의 거부는 오래가지 않으리란 예상이다. 스스로가 우리 문제는 우리끼리 논의하자는 주장을 되풀이해 왔고,고위급회담에서도 남북간에 군사긴장완화를 위한 당사자협정체결을 거듭 주장해온 논리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정전협정 2조 20항도 수석대표 임명은 유엔군사령관의 고유권한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우리로서는 판문점이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유엔군사령부보다는 한중 미군과 북한­중국군을 쌍방으로 하는 실질적 대화의 장으로 바뀌어야 하고,더 나아가 남북간의 군사관계 당사자대화의 길이 열리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장기정전과 군사대치상태의 해소는 외국인을 통한 간접대화보다는 민족적 공동체 인식을 함께하는 남북당사자간의 공동노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북군 장성이 직접 대화하는 정전위원회의 변모가 그동안 남북간에 제기되어온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이에는 휴전선의 비무장지대 주변 군사력 감축에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방안 등 그동안 우리측이 제시한 제안들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성급한 기대일지는 모르지만,그것은 또 남북간의 군축과 평화통일의 토대구축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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