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in] 2006 한국영화계 외·화·내·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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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연이은 1000만 관객 영화의 역대흥행 신기록 경신-.'왕의 남자'와 '괴물'로 기억하는 2006년 한국영화계의 폭발력은 눈부셨다. 외형 역시 기록적이다. 올 극장가에 걸린 한국영화는 다음주 '조폭 마누라3'까지 무려 108편. 지난해 83편 보다 급증한 것은 물론이고 1990년대 이후 최대량이다. 한국영화 점유율 역시 11월까지의 성적만으로는 60%에 달한다.

하지만 계산기를 두드려본 충무로의 실상은 이와 다르다. 한마디로, 돈 번 영화가 줄었고, 손실의 규모는 예년보다 처참하다.

이후남.주정완 기자

◆ 투자수익률 마이너스 30%=극장 수입만 놓고 보면 올해 한국 영화의 전체적인 투자수익률은 마이너스 30%로 추산된다. CJ엔터테인먼트가 108편 가운데 저예산 작품을 제외한 국내 주요 배급사의 상업영화 85편을 대상으로 분석한 추정치다. 이대로라면, 국산 대작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한 2002년 이후 가장 나쁜 성적이다. 이후 3년간은 해외수입 등을 합쳐 소폭이나마 흑자를 유지해왔다.

이 추정에 따르면 올해 한국영화의 편당 제작비는 53억원에 달한다. 관객 수로 환산하면 최소 180만여명은 관람해야 수지를 맞추는 규모다. 올 개봉작 가운데 이 정도 성적을 낸 영화는 15편 정도(영화진흥위원회 집계기준)다. 거칠게 보면 전체 영화 가운데 다섯 편 중 한 편 남짓만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는 얘기다.

이 같은 실적은 흥행상위권 영화에도 드러난다. 1000만 관객 영화가 2편이나 되지만, 3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수는 지난해보다 줄었다. 반면 관객 30만명도 못 넘긴 영화의 비중은 크게 늘었다. 개별영화의 손실규모가 커졌다는 얘기다.

◆ 과잉투자 우려 현실화=CJ엔터테인먼트의 예상수익에는 해외수출이나 비디오.방송 등 부가판권수입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합해도 크게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한류에 기댄 해외수출이 올해 크게 줄었고, 비디오.DVD 시장 역시 위축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김영진 교수(명지대)는 "부가판권 등 다른 시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시장규모나 제작능력보다 더 많은 영화가 만들어졌다"면서 "이것이 완성도 하락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실 올해 한국영화가 100편 넘게 나올 것이라는 관측은 연초부터 나돌았다(본지 5월9일자 참조). 영화사.매니지먼트사의 우회상장붐과 이동통신사의 충무로 진출에 따라 투자확보가 상대적으로 쉬워졌기 때문이다. 개봉편수는 108편이지만 내년으로 개봉이 미뤄진 영화까지 합하면 제작된 작품은 120편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영화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면서 마케팅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총제작비 가운데 마케팅비의 급증세가 이를 뒷받침한다. 거의 20억원에 달해 총제작비의 3분의1을 넘는다. 광고비를 퍼부어 흥행이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구조다. 김영진 교수는 "영화규모에 관계없이 첫주말 흥행성적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말했다.

◆ 거품빼기 이미 시작=충무로는 이 같은 여파를 벌써 체감하고 있다. 주요 배급사들의 내년 초 개봉작은 올해 투자.제작한 작품들로 먼저 채워질 전망이지만, 새로 제작에 들어가는 영화의 움직임은 올 초와 크게 다르다. 스튜디오 예약경쟁이 치열했던 남양주 종합촬영소의 분위기가 한 예다. 촬영소 한화성 차장은 "문의를 해오는 영화가 9월쯤부터 눈에 띄게 줄었다"면서 "다만 세트 촬영이 많은 영화가 제작에 들어가면서 스튜디오 예약은 현재 3월까지 차있다"고 전한다.

올해 12편의 영화를 개봉한 충무로의 대표적인 제작사 싸이더스 FNH도 내년 작품은 이미 촬영이 끝난 2편 이외에 확정되지 않았다. 모기업 KT의 300억원 규모 펀드가 본격화된 이후에야 제작일정을 구체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사의 움직임은 신중해졌다. 같은 제작사의 여러 작품에 한꺼번에 투자하는 이른바 '패키지 투자'를 기피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유콘텐츠 서영관 대표는 "추석 대목 이후 수익을 낸 영화가 거의 없을 정도로 예상보다 빨리 손실이 현실화됐다"면서 "투자사들이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 대표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톱스타를 캐스팅하면 투자받기가 쉬웠지만 요즘은 그것만으로는 투자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 충무로 부문별 희비
극장 '웃고'전체
관객 크게 늘어
제작.투자 '울고'
제작비.출연료 급증

2006년 충무로는 부문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영화 상영부문은 비교적 괜찮았지만 제작.투자부문은 대체로 부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극장 관객 수는 크게 늘어나 1억6000만명을 넘어선 반면 정작 흥행에 성공해 돈을 버는 영화는 적었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증시에 상장된 영화사들의 올 들어 9월까지 실적을 본지가 분석한 결과다. 이에 따라 극장 입장료에서 상영부문과 제작.투자부문이 나누는 몫을 현재 5대 5에서 4대 6으로 바꾸자는 제작.투자사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선 극장 관련 상장사 두 곳은 나란히 흑자를 기록했다. 국내 최대의 멀티플렉스인 CGV는 2046억원의 매출과 204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매출 1789억원, 순이익 200억원)에 비해 매출은 14%나 증가하고 순이익도 조금 늘어난 것이다. 대한극장을 운영하는 세기상사도 전년 동기(8억원)보다 많은 10억원의 이익을 냈다.

영화제작 관련 상장사들은 태원엔터테인먼트를 제외하면 실적이 별로 좋지 않았다. '맨발의 기봉이''연리지'를 제작한 태원은 9월까지 37억원의 흑자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68억원)에 비해 큰 폭의 실적개선을 이뤘다. '사생결단''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MK픽처스는 사실상 본전치기 장사(순이익 268만원)를 했다. 그러나 '청춘만화'의 팝콘필름(-37억원)과 '예의없는 것들'의 튜브픽쳐스(-99억원)는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

국내 배급 순위 1, 2위를 다투는 CJ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법인명 미디어플렉스)도 희비가 엇갈렸다. 쇼박스는 57억원의 흑자를 냈지만 비상장인 CJ엔터는 상당한 적자로 추정된다.

매니지먼트사들은 일제히 적자를 기록했다. 스타 배우들의 출연료가 올라가면서 외형은 화려해졌지만 기획사보다는 스타 개인이 가져가는 몫이 더 커지면서 실속은 챙기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인성.송혜교.임수정 등이 소속된 iHQ가 27억원의 적자를 낸 것을 비롯해 장동건 등의 스타엠(-50억원), 권상우 등의 여리인터내셔널(-58억원), 배용준 등의 키이스트(-16억원)도 적자에 머물렀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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