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정권' 으로 막판 대역전 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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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두고 큰 연합, 큰 통합을 이룰 수 있다. 여러 정당이 모여 후보를 만든다면 굉장한 힘을 가질 것이다."

2002년 대통령 선거일로부터 정확하게 4년이 지난 19일.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씨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천호선씨가 똑같은 얘기를 했다. 4년 전 당시 노 후보가 승기를 잡아 가던 저녁 바로 그 무렵이었다. 안씨는 서울, 천씨는 부산에서 열린 친노(親盧) 성향 사람들의 모임에서였다. 두 곳 모두 노풍(盧風.노무현 지지 바람)이 거셌다.

요즘 노 대통령의 주변에서 공개적으로 '대통합'을 얘기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노 대통령의 측근인 이광재 의원도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1997년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JP(김종필 전 총리)의 정책 공조가 이뤄진 게 11월 초, 2002년 대선에서 노 대통령과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 간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 게 11월 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내 신당파들이 왜 조급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천호선 전 실장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했다. 그는 "지금은 통합을 완성할 수 있는 때가 아니다"고 했다. 그는 "9월이나 10월께나 돼 통합해야지 지금 눈에 보이는 상대만으로 통합하는 건 불안하다"고 말했다. 친노 그룹 한 핵심 관계자는 이와 관련, "2월 전당대회 이후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 징병제→모병제 카드도 거론=친노 그룹의 이런 인식은 현재의 대선 구도론 한나라당의 빅3(이명박.박근혜.손학규) 구조를 이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한나라당 세력을 총결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 준비를 위해 부산에 내려간 최인호 전 청와대 비서관은 "이제 한 명의 후보가 전부를 가져가기엔 현재 여권 구도론 어렵다"며 "각 지역과 정치 세력이 각각의 지분을 갖는 주식회사 형태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게 노 대통령이 갖는 차기 대권 구상"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염두에 둔 '주식회사' 또는 '대선 막판 대통합'은 어떤 것일까. 현재로선 세 종류, 또는 세 단계의 통합이 거론되고 있다.

우선 정책을 매개로 한 개혁세력과의 만남이다. 열린우리당의 창당 정신과 노선을 더욱 발전시킨 형태다. 친노파 일각에선 "신당파의 이탈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안희정씨는 "시민사회를 포함한 개혁세력과 실질적으로 어떤 정책의 교환이 가능한지 터놓고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남북 정상회담이 주로 거론된다.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은 "현재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꿔 젊은이들과 그 가족을 열광시키는 대선 히든 카드가 거론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둘째, 영남에서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을 분리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PK 지역에서 30% 이상 득표한 게 승인 중 하나였다는 분석도 있다. 김혁규 의원은 "부산과 경남을 묶는 작업에만 매달릴 생각"이라며 "그 이후 어떤 형태로든 그림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셋째, 말 그대로 '대통합'이다. 대선 임박해서 고건 전 총리의 세력, 민주당 또는 이탈한 신당파 등 각 세력이 지분을 유지한 채 통합하는 것이다. 97년의 정책 공조, 2002년의 후보 단일화 등 다양한 통합이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서울대 정운찬 전 총장 등 제3후보를 영입하는 것도 이 무렵이라고 한다.

◆ "과거와 다른 판세다"=이런 시나리오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란 비판이 나온다.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은 "97년엔 DJ와 JP란 경쟁력 있는 후보가 병립하고 있었고, 2002년엔 월드컵 영향으로 정몽준 후보란 돌연변수가 튀어나왔기에 그런 구도가 가능했다"며 "2007년에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2002년의 학습효과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민기획 박광민 대표는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헤어졌다 만나는 것이어서 감동이 덜할 수 있다"며 "어떻게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있느냐가 성패의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한나라당의 빅3 경쟁 구도가 점입가경인 것도 2002년과 다른 점이라고 말한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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