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Blog] 굵직한 배급사들의 '제살 깎기'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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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CJ엔터테인먼트는 전혀 사실이 아닌 보도자료가 나돌고 있는 데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밝힙니다."

이틀 전 국내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국내 영화배급사 1, 2위를 다투는 큰 회사 CJ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가 서로를 '긁는' 보도자료를 번갈아 낸 것이지요. 초점은 현재의 흥행성적 격차와 연말 배급순위 1위가 누구냐였습니다.

일은 쇼박스가 시작했죠. 자체 집계를 근거로 두 회사의 관객 수 격차가 "48만여 명(CJ엔터테인먼트 3363만여 명, 쇼박스 3315만여 명)"이라면서 "격차는 점차 줄어들고 있어 쇼박스의 우세가 점쳐지는 상황"이라고 먼저 자료를 냈습니다. 한마디로, 지금은 2등이지만 올해 안에 1등이 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CJ엔터테인먼트는 전국 극장의 90%가 가입된 영화진흥위원회 극장전산망의 집계를 인용해 곧바로 반박자료를 보냈습니다. "두 회사의 관객 수 차이는 254만여 명(CJ엔터테인먼트 2912만여 명, 쇼박스 2658만여 명)"이고, "두 회사가 배급한 외국영화까지 합하면 격차는 336만여 명"이라는 거죠. 또 자체 집계로는 자사의 관객 수가 '3480만여 명'이라고 밝혔습니다. 어느쪽이든, 쇼박스의 수치가 틀렸다는 주장이죠.

사연을 거슬러 올라가 보죠. 지난해 쇼박스는 서울관객 기준으로 창사 이래 처음으로 한국영화 배급사 1위를 차지했습니다. 후발주자에게 1위를 내준 것은 CJ엔터테인먼트로서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죠.

구경꾼 입장에서는 좀 딱합니다. 두 배급사는 물론이고, 한국 영화계 전체의 올해 성적표는 제가 학부형이라면 결코 웃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우선 각자 주장하는 수치로 거칠게 계산을 해보죠. 쇼박스는 17일 현재 19편의 한국영화로 편당 170만 명, 총 3300여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괴물' 한 편의 관객 1300만 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영화는 평균 110만 명 수준이란 계산입니다. 요즘 한국영화 평균제작비를 감안하면 액면 그대로는 손익분기점을 크게 밑도는 성적이죠.

CJ엔터테인먼트는 17일 현재 2900여만 명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도 '타짜'의 680만 명, '투사부일체'의 610만 명 등을 제외하면 평균적으로 기대 이하라는 걸 쉬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앞날도 볼까요. CJ엔터테인먼트는 이번 주 대작 영화 '중천'을 개봉합니다. 쇼박스는 지난주 개봉한'미녀는 괴로워'가 흥행 중인 와중에 다음주 '조폭마누라3'를 개봉합니다.

두 회사가 경쟁을 벌여온 게 하루 이틀은 아닙니다만, 이번 일은 이모저모 관객의 불신을 부추길 우려가 큽니다. 우선 각기 다른 수치를 낸 데서 흥행성적 자체가 한 차례 불신을 받게 되죠. 더구나 두 회사는 각각 CGV와 메가박스라는 영화관 체인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쇼박스는 증시에 영향을 미치는 상장 회사이기도 하고요. 두 회사가 기울일 '최선'의 내용에 불공정 경쟁의 의혹은 등장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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