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만에 쓰러진 동장님(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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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자제선거로 인한 과중한 업무부담이 결국 동장님의 명을 재촉하고만 셈입니다.』
11일 오전 10시 서울 은평구청앞 광장. 전날 내린 늦겨울 비로 촉촉히 젖은 광장을 가득 메운 3백여 조객들의 애도속에 동장취임 3일만인 지난 8일 과로로 순직한 녹번동장 박치선씨의 영결식이 엄숙하게 치러졌다.
『선거가 시작되는 이때에 동장으로서 중책을 맡게돼 부담스럽다』고 말했던 박씨는 5일부터 시작된 선거관련업무로 매일 밤늦게까지 격무에 시달렸다.
선거인명부 작성,주민등록표 점검 등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빴던 박씨는 결국 폭주하는 업무를 이겨내지 못하고 병원 응급실에서 착실하게 걸어온 한 일선 공무원으로서의 생애를 마감했다.
17세에 고향인 경기도 화성에서 혼자 상경,고학하면서 대학을 마치고 31세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박씨는 처음 서울시청에서 출발,22년간 착실하게 생활하면서 주위로부터 「강직하고 성실하다」는 평을 들은 극히 평범하면서도 제갈길만 갔던 일선 공무원이었다.
녹번동 사무장을 지내던 박씨가 동장으로 진급한 것은 지난 5일. 그는 평소에도 동료나 식구들에게 『건강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며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해왔고 스스로도 등산 등을 하면서 건강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동장 취임후 갑자기 떨어진 지자제 업무에 시달리면서 그의 건강도 균형을 잃고 말았다.
이 때문에 박씨는 최근 며칠간 회의자리에서 일그러진 표정으로 머리를 만지는 등 고통스러워했다고 한 직원은 안쓰러워 한다.
박씨의 사망원인은 「뇌출혈」. 그러나 한 공무원의 죽음은 「졸속선거」에 따른 「졸속준비」가 불러온 것이어서 그 안타까움을 더해주는 듯하다.<유광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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