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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7가]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중앙일보

입력

최근 중앙일보 특파원이 독일 동부 예나에서 보내오는 연신들은 가슴을 '턱' 막히게 합니다. 옛 동독 시절 북한 유학생과 결혼했다가 1년만에 생이별을 한 채 45년째 살아온 레나테 홍(69) 할머니.

18세 대학 신입생 때 세 살 위 남편을 처음 만나 5년간 사랑을 키우고 부모의 거센 반대에 하객도 없는 결혼식을 올린 그녀는 1년만에 남편을 북녁으로 떠나보냅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을 세워야 할 정도로 동독 주민들의 서독 탈출이 잦아지고 유학생들이 가세하자 북한 당국이 유학생 전원을 송환한 것입니다.

당시 돌도 안지난 첫째와 뱃속에 5개월된 둘째 아들이 있어 함께 북송 기차에 오르지 못했던 그녀는 2년간 50통의 편지를 주고받다가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구려. 오늘은 단지 내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소'라는 남편의 마지막 편지를 받습니다. 이후 그녀는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오는 자신의 편지만 속절없이 받으며 40여년이란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녀는 아직도 남편의 홍씨 성을 그대로 쓰고 재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살아있는 '망부석'입니다.

지지난주 타이거 우즈를 꺾고 유럽골프투어 HSBC챔피언스에서 우승한 양용은은 금의환향한 인터뷰에서 목이 메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월세 15만원의 셋방을 전전하면서도 자신만을 믿고 고생을 참아준 아내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특히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잔소리나 타박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에게 10년을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19세의 늦은 나이에 골프를 시작해 변변한 레슨도 받아보지 못해 한 때는 '돈만 조금 있으면 수퍼마켓이라도 할텐데' 후회도 하고 한국 신인왕이 되고도 수중에 떨어진 돈이 1천만원도 안돼 클럽 대신 술잔을 잡고 '골프가 나만 좋아서 하면 될 일인가'라며 좌절에 빠지기도 했던 그가 '늦깎이'로 스타 탄생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묵묵히 곁에서 지켜봐준 아내였던 것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아내가 바꾼 남자가 있습니다. 개리 셰필드입니다. 스프링캠프 때만 되면 '친자 확인 소송'을 당하고 이혼도 두 차례나 했던 그는 가스펠송 싱어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 '개차반' 인생을 벗어나 '사람'이 되었습니다.

셰필드는 언젠가 "많은 여자들이 내가 연봉을 많이 받는 야구 스타라는 사실을 알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변화시켰다"고 고백했습니다. 셰필드의 아내 사랑은 지극합니다. 2년 전이었던가요. 섹스 비디오 테이프를 미끼로 아내의 전 매니저가 협박하고 금품을 요구했을 때 그런 아내를 지켜준 것은 바로 남편 셰필드였습니다.

10여년 전 한국의 한 커피 광고에서 모델 안성기는 특유의 정감어린 목소리로 이런 카피를 읊었습니다.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아내란 이름은 때로는 놀라운 힘입니다. 남자에게 잃었던 힘과 용기를 찾아주고 변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때론 슬픔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빛나도록 아름답습니다. 한국과 국제 적십자사 그리고 한.독 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레나테 홍 할머니의 북녁 남편 찾기가 하루 빨리 좋은 소식은 물론 건강한 모습으로 두 분의 상봉까지 이르기를 학수고대합니다.

미주중앙일보 구자겸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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