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반도체 값 뚝 떨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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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일본의 메모리칩 반도체 업계가 피나는 가격 경쟁에 돌입했다.
주력 상품인 1메가 D램의 가격은 작년 9월이래 40%나 떨어져 개당 4·5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1메가 D램의 가격 하락은 다음번의 주력 제품인 4메가 D램에도 영향을 미쳐 이를 개당 l7달러 선까지 끌어내렸다.
이같은 가격은 4메가 D램의 증설을 위한 비용 감당을 어렵게 하는 수준으로 여겨지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메이커들은 지난 85년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였지만 당시는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의 어리석음」 덕에 살아났다.
당시 미국은 실제 있지도 않았던 미국 내 D램 산업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가격 인상을 요구했고 일본과 반도체 협정을 맺었다.
올해 이 협정이 만료되나 이제 미국은 그 같은 어리석은 정책보다 당시 13%로 정했던 일본의 외국산 반도체 사용 비중을 20%로 높이는 데만 관심을 쏟고 있다.
일본 반도체 산업의 주력 시장인 미국의 컴퓨터 산업은 작년 8월 이후 깊은 침체기로 빠져들었다.
그 결과 일본의 주요 D램 메이커인 도시바·히타치·미쓰비시·일본전기 (NEC) 등에는 4메가 D램 재고가 쌓였고 이들 업체는 시장 점유율 확대와 이를 위한 규모 키우기로 이를 타개하려 했다. 그동안 일본의 반도체 업계가 4메가 D램의 증설에 투자한 돈은 8천5백억엔 (약 4조6천7백억원)에 달했고 올 3월이면 연산 1억2천만개의 생산 시설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올해 4메가 D램의 수요는 최대 1억개에 그칠 예상이다.
불안에 빠진 일본 업계는 내달 초부터 차세대 반도체인 16메가 D램의 본격적인 발매에 나설 것을 밝히고 있다. 빨라야 92년 이후에 발매가 예상됐던 16메가 D램의 조기 발매에 따라 세계 반도체 시장은 3개 세대의 반도체가 동시에 생산, 대량 판매되는 사상 최초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이에 따라 l메가 D램보다 적어도 5배 이상의 값에 팔려야할 4메가 D램은 내년에 3배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이고 16메가 D램은 시장 초기 형성 단계에서 4메가 D램의 9배 가격 밖엔 받지 못할 전망이다. <박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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