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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인이고 싶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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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그러나 정작 피 중령을 다시 목 조른 것은 암세포가 아니었다. 군 인사법 시행 규칙 중 '장애등급 조항'이었다. 이 조항에 따르면 가슴 양측 절제는 2급, 한쪽 절제는 8급, 악성 종양(암)은 2급으로 1급부터 7급 처분이면 자동 퇴역이다. 결국 피 중령은 유방암에 걸렸고 양쪽 가슴을 절제했다는 이유로 11월 30일부로 퇴역당했다. 피 중령은 곧장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13일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중앙 군 인사소청 심사위원회는 피 중령이 제기한 '퇴역처분 취소' 소청을 기각했다. 퇴역처분은 군 인사법에 따라 적법했다는 것이다. 물론 적법하다. 하지만 적절하지도 적합하지도 않은 결정이었다. '장애등급 조항'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군인도 사람이다.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암에 걸릴 수도 있다. 또 그것을 극복할 수도 있다. 단지 암에 걸렸기 때문에 군에서 쫓아낼 일은 아니다. 그것을 초인적 의지로 극복한 사람은 군에 남을 자격이 있다. 피 중령은 퇴역을 한 달 앞둔 10월 30일 길을 떠났다. 땅끝마을 해남에서 출발해 휴전선 통일전망대가 있는 고성까지 800여㎞를 23일간 걸었다. 매일 오전 6시30분에 길을 떠나 어두워질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어느 군인 못지않게 강건하다는 것을 시위하고 싶었던 게다. 이런 그를 단지 암 병력이 있다는 이유로 군에서 내쳐서야 되겠는가.

가슴 절제 문제도 그렇다. 피 중령의 경우엔 육군 항공병과 소속이기에 절제 뒤에 남은 상처가 문제였다. 통상 군에서 공중 근무자는 몸에 상처가 있으면 안 된다. 고속으로 급상승.급강하할 경우 기압 차로 인해 상처 부위가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 중령은 전투 비행기가 아니라 헬기 조종사다. 더구나 피 중령은 분기별 의무 비행 시간을 거뜬히 채우고서도 육군항공학교 학생대 학생대장으로 사실상의 지상근무를 해 왔다.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암에 걸렸고, 유방을 절제해 상처를 남겼다는 이유로 더 이상 군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군의 주인인 국민의 상식에 반하는 일이다. 피 중령은 대학 졸업 뒤 1979년 소위로 임관해 11월 30일 퇴역할 때까지 27년간을 오로지 군에서만 살았다. 결혼도 하지 않았다. 군이 전부인 사람이다. 타의로 군을 나온 지금도 유일한 소원이래야 군에 복직하는 것이다.

이런 피 중령이 군인의 길을 끝까지 걷겠다는 것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 최초의 여군 헬기 조종사 출신이니 배려하자는 것도 아니다. 현실에 맞지 않는 군인사법의 시행규칙을 고쳐 멀쩡한 군인을 내치지 말고, 진짜 군인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시행규칙의 장애등급 조항을 손댄다고 군이 환자 집합소가 될 리도 없다. 오히려 피 중령 같은 사람들로 인해 군은 더 강해질 것이다. 누구는 군을 못 나가 안달인데 피 중령처럼 군에 뼈를 묻겠다는 독한 마음의 진짜 군인을 내쳐서야 쓰겠는가.

정진홍 논설위원

*** 바로잡습니다

12월 14일자 10면 '유방암 퇴역 뒤집지 못했다' 기사와 16일자 38면 칼럼 "나는 군인이고 싶다" 내용 중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헬기 조종사는 피우진 예비역 중령이 아니라 김복선 예비역 대위인 것으로 확인돼 이를 바로잡습니다. 피 중령은 두 번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