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로 번지는 수서증후군(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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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수서사건에 대한 국민의 의혹이 풀리지 않은채 사건이 장기화함에 따라 그 후유증이 사회 각 부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당국의 권위가 땅에 떨어짐으로써 국민들의 준법의식이 눈에 띄게 약화되었고 경제난국을 함께 헤쳐나가기 위해 욕구를 자제하려는 분위기도 점차 사그러들고 있다. 불법 심야영업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 좋은 보기다.
서슬이 퍼렇던 당국의 「범죄와의 전쟁」도 요즘엔 흘러간 노래처럼 시들해진 느낌이다. 뿐만 아니라 모처럼 활기있게 전개되던 공명선거운동마저 수서분위기에 파묻혀 버렸다.
이러다가는 그동안에 전개된 우리 사회의 그나마의 긍정적인 노력들 마저도 하나같이 무산돼 버리고 모든 것이 원점으로 되돌아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갖게 되는 요즈음이다.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허탈감과 무력감에서 우리들은 하루빨리 헤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지도력을 발휘해야할 정치권이나 정부의 상층부가 모두 지탄의 대상이 됨으로써 지도력의 공백상태가 빚어져 있다.
그리고 그런 공백상태는 한동안 더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극히 위험스런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에게 의지하고 기대할 것도 없이 우리들 각자가 맡은 바 직책에 배전의 책임감과 성실로써 일해 사회지도력의 공백이 가져오는 사회적 혼란과 낭비를 막아내야 한다.
그렇지 못할때 우리사회의 혼란과 불안정은 갈수록 확대될 것이고 그것은 파국적인 정치적 사회적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최근 공직사회의 일각에서 보여주고 있는 태만과 무사안일 등 기강해이 현상은 지극히 걱정스럽다. 공직사회의 책임의식이 이토록 희박하고 안정성이 약하다면 과연 지방자치제인들 제대로 실시될 수 있을는지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1일 수도권에서 벌어진 전동차사고는 공직사회의 해이와 동요를 말해주는 대표적 사건이다. 이날 사고는 무려 11건이나 됐다. 이는 이날의 사고가 실무자 몇몇의 태만이나 소홀로 빚어진 것이 아니라 철도청 전체의 근무자세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사고원인도 간단한 것이었다. 전동차 밑부분에 쌓였던 눈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운행해 눈이 녹으면서 합선된 것이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또 이런 일이 올 겨울에 처음 겪는 일일 수도 없다. 제설작업만 하고 운행했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일이었다. 그런데 이 간단하고 의례적인 일마저 소홀히 해서 그 큰 소동을 빚어낸 것이다. 한마디로 나사가 풀린 탓이라고 할밖에 없다.
같은 날 서울시의 교통대책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눈온 다음날의 제설작업이야 겨울에는 정해져 있는 일인데도 일선 구청과 동사무소가 약속이나 한듯 늑장을 부렸다. 이 역시 몇몇 개인들의 잘못이라기 보다 서울시의 행정전반이 책임감과 안정감을 상실한 증거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의 각 구청에서는 수서사건 이후 주택조합업무를 기피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법대로 공정히 처리하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련만 그저 책임지기만 두려워하며 안일만 좇는 것이다. 정치권과 권력상층부를 모두 비난하고 있지만,모두가 이런 태도들이어서는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공직사회의 기강해이를 특히 문제삼는 것은 공직사회의 안정과 책임의식의 확립이야말로 그 사회 전체의 안정에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험에서 보듯 공직사회가 안정되어 있을 때는 웬만한 정치적 변화가 있어도 사회가 능히 그것을 흡수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공직사회마저 동요했을 때는 사회전체가 동요되고 말았다.
따라서 각 행정책임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공직자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자신의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도록 분위기를 바로 잡아야 한다. 수서문제로 인한 사회불안을 가라앉히는 지름길도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는 수서문제의 의혹을 풀어 민심을 수습하는 일과는 별도로,해이된 공직사회의 분위기를 바로잡는 전체 정부차원의 대책이 서둘러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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