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사진 시문 180여곳 "작품"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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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겨울엔 여름을,봄엔 가을을….』
충무로3가 극동빌딩뒤편 옛서울보건전문대 부근은 계절을 앞서가는 사람들의 거리다.
1백80여곳에 이르는 상업사진 스튜디오가 몰러있는 이른바 스튜디오 거리-.
하지만 대부분의 스튜디오가 간판마저 없거나있어도 눈을씻고 찾아야겨우 눈에 띌 정도로 작아 큼지막한 은색 철제사진통을 메고 다니는 사람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는 사실 외에는거리외관상 도심의 여느먹자골목이나 번화가 풍경과 다를바 없다.
이곳에서 규모가 가장큰 세영스튜디오사무실(80평) 의 간판도 유리창에붙인 손바닥 2개 크기의 스티커가 전부.
『포스터. 신문·잡지등 전국 모든 광고사진의 90%가 이곳에서 만들어지죠』
세영스튜디오 대표 양세민씨 (52) 는 이 일대 스튜디오 가운데 1백3O곳만이 광고사진가협회에 가입돼 있고 미등록까지 합하면 1백80곳이 된다고했다.
이곳에 스튜디오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경제발전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60년대초부터.
각종 상품들이 쏟아져나오면서 사진광고의 필요성이 커졌고 이때 김한용(59). 한영수씨등 현재 광고사진계의 원로급들이 뛰어들었다.
당시만해도 충무로일대의 다방등엔 영화배우들이 항상 진치고 있어 인물중심의 광고가 주종이던 당시로서는 모델을 쉽게 구할수 있는 장점이있었던 것.
이후 각대학에 사진학과가 생겨나 여기서 배출된 인력들이 스튜디오를 계속 차려 현재에 이르렀다.
『충무로의 낭만따위는 사라진지 오랩니다. 현재는 철저한 직업의식으로 무강한 대중문화의 초병들이 살아남기 위해 피나는 경쟁을 벌이는 싸움터죠.』
프타운 스튜디오의 정광무씨(44) 는 콜라병 사진한장의 작품을 만들어내는데만도 만하룻 동안의시간과 2백여장의 필름이 소모된다고 말한다.
광고주로부터 의뢰받은광고대행사·광고기획 사무실에서 촬영 요청이 오면 이곳에서 사진을 찍은뒤 부근 현상소의 현상을 거쳐 원색분해작업만을 전담하는 사무실로넘겨진다.
작업이 끝나면 바로 옆동네인 인현동의 인쇄소로 넘어가 이곳에서 각종 포스터·캐털로그·리플릿·팸플릿이 찍혀 나온다.
『이같은 과정때문에 보증금 1천만원에 월1백만원씩이나 하는 비싼 건물임대료와 주차공간도 전혀없는 열악한 지역여건에도 불구, 다른지역으로스튜디오를 옮기지 못하는 거죠.』
정씨는 다른지역으로 무턱대고 옮겨갔다가는 주문감소는 물론 주문이 있다해도 관련직종업체가 전혀 없어 망하기 십상이라고 설명한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좀더 나은 사진효과를 얻기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아이디어 개발은 치열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코피사진을 위해 담배연기를 이용하는것은 구식이고 요즘은 드라이아이스가 주무기.
또 음료수병이나 유리컵에 맺히는 물방울을 글리세린으로 대신 만드는가 하면 하얀 눈을 찍기위해 소금이나 스프레이기계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하고서도 광고주로부터 OK를 받지못하면 밤을 새워서라도다시 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촬영작업을 「OK목강의 결투」 라고 종종 표현한다.
탤런트모델들이 이곳에서 사진찍다가 녹화시간에 종종 「평크」 를 내는것도 이때문.
힘드는 작업이지만 남들보다 4개월정도 계절을 앞당겨 맞이하는 낙(악) 도 있다.
새로 선보일 신상품의사진을 수개월전에 미리찍어둬야 각종 홍보준비를 하고 경쟁회사보다 더 빨리 판매시장을 점령할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대부분의 스튜디오에서 봄철상품들에 대한 촬영이 끝났습니다. 지금부터는 슬슬 여름상품촬영을 준비할 단계죠.』 P스튜디오의 김기민씨(29)는 『다음주면 비키니차림의 여자모델을 구경할수 있을 것같다』고 했다.
촬영은 물론 촬영의뢰상품의 「보안」 을 철저히지키는 것도 이곳 스튜디오거리의 최대 과제.
승용차· 가전제품· 화장품·라면등 경쟁이 치열한 상품의 촬영때면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몇해전엔 한 스튜디오에서 전자제품의 촬영을하던중 경쟁회사의 직원이 쓰레기통을 뒤져 필름을 빼내가는 바람에 경갱회사에서 동일한 제품을 먼저 홍보, 스튜디으사무실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낭만과 예술,그리고「로맨스」가 풍미하던 충무로 골목길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 오늘도 스튜디오의 전구에서 뿜어내는 뜨거운 경쟁의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이효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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