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e] "외모가 멀쩡해서 … 8년 무명 설움 겪었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서울예대 방송연예학과 동기인 영화배우 신하균이 제일 기뻐하더군요. '성호야, 이젠 너를 설명 안 해도 사람들이 알아봐 줘'라고요. 전에는 정성호하면 누구냐 묻고, 얘기해도 모르더래요."

MBC-TV '개그야'에서 '주연아''크레이지'라는 코너로 주목받고 있는 개그맨 정성호(30.사진). 1998년 MBC 개그맨 공채 9기로 데뷔해 놓고도, 위아래 기수인 고명환.문천식.이혁재가 뜰 동안 정성호는 '무명 8년'이라는 눈물어린 세월을 보냈다.

"왜 나는 안 될까라는 생각에 2년 동안 두문불출한 적도 있었죠. 요즘은 아나운서 김성주 형이 해준 '성호야, 메뚜기도 한철이다. 바짝 뛰어'라는 말대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정성호는 '주연아'에서 과외선생과 여학생의 야릇한 과외수업을 개그 소재로 삼아, 땀을 뻘뻘 흘리고 더듬더듬하며 "주연이 너"라는 대사를 되뇌어 인기를 얻고 있는 인물. 최근에는 각 연예프로그램 출연자들이 김미려의 '사모님' 흉내에 이어, 정성호의 '주연아'를 한마디씩 따라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다.

'주연아'의 특징은 말을 어눌하게 하면서도 핵심이 되는 단어 한마디는 꼭 끼워넣는다는 것. "주연이 너… 선생님한테 이러면…너 주연이…코너는 내가 만들고 인기는 지가"라는 식이다. 또 정성호는 '크레이지'라는 코너에서 통기타를 둘러메고 나와 한석규 닮은 원래 목소리와 여성스럽게 꾸며낸 목소리를 한 소절씩 바꿔가며 노래를 부른다. 그가 마치 두 남녀가 대화하듯이 노래를 부르고 나면 관객들은 박장대소하게 마련.

그는 재주가 많다. 특히 서경석.백윤식.정진영 등으로 이어지는 성대모사 메들리는 가수 성시경이 "이건 성대 모사가 아니라 안면 모사다"라고 할 정도로 입 모양, 얼굴 표정까지 똑같이 흉내 낸다. 한번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박철을 흉내 내고 있는데 옆방 PD가 "박철이 왔냐?"며 뛰어 들어왔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복사판이다. 정성호가 데뷔한 사연도 이런 끼를 알아본 주철환 교수 덕분이다. 당시 MBC PD로 서울예대에서 강의를 하던 주 교수가 "성호가 방송에 나오면 인기가 있을 텐데"라고 한마디한 것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위의 격려에도, 무명의 아픔은 컸다. MBC-TV '코미디쇼 웃으면 복이 와요''웃는 데이' 등의 프로그램에 끊임없이 섰지만, 그를 알아보는 시청자가 없었다. "조혜련씨가 했던 '골룸' 기억나시죠. 그 옆에서 서 있던 레골라스가 바로 저였잖아요. 그때 화면을 다시 봐도 올백으로 넘겨 묶은 머리 하며 진짜 똑같았는데 누구도 기억을 못해요"라며 정성호는 이제야 웃으며 그때를 기억했다. "키 180㎝에 너무 멀쩡하게 생긴 제 외모 탓"이란 농담도 했다. 그 밖에도 그는 케이블 프로그램의 리포터며 수많은 활동을 했다.

"'개그야'가 마지막이라는 심정이었어요. 담당 PD도 '이번에 못 뜨면 너희들을 누가 쓰겠냐'고 냉정하게 말해줄 정도였지요."

이런 절박한 마음으로 실제 나이도 띠동갑에 가까운 개그맨 후배 김주연(20)과 3주 동안 합숙 훈련을 해 가며 연인 컨셉트로 수십 개의 개그를 짰다. 그중 하나로 터진 것이 '주연아'다.

그는 "새벽 4시까지도 연습을 마다하지 않는 주연이한테 고맙죠. 다들 제가 개그 짜고 연기도 받쳐준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주연이한테 덕 보는 게 더 많아요"라고 했다. 한번 방송되고 나면 인터넷 검색 순위 1~2위를 다투는 귀엽고 깜찍한 김주연의 인기 덕분에 코너가 살고, 자기한테까지 관심이 미치게 됐다는 것이다.

사실 정성호도 인터넷 검색 순위에 오르는 항목이 있다. 바로 '정성호의 땀'. 코너 진행 내내 땀을 계속 흘려 "분무기로 뿌려서 분장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쇄도하고 있다는 것. 그는 "오죽하면 분장실에서 '주몽'의 오연수씨가 '보약 좀 먹어야 되겠다'고 걱정해 줬겠느냐"며 "제가 땀을 많이 흘리는 것도 화제로 삼아주니 고마울 따름"이라고 했다.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오로지 개그 무대만 생각했다는 정성호. "추석 때 이틀 쉰 것 빼고는 쉬어본 적이 없다"며 "사람들이 웃어주는 모습만 봐도 너무 행복하다"고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글=홍수현 기자 <shinna@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