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구하기 전 개요를 짜게 하라

중앙일보

입력

초등 고학년생 논술 어떻게 가르치나
초등 저학년 학생들이 글을 쓸 때 문법이나 맞춤법에 집중하도록 요구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맞춤법과 문법에 신경 쓰느라 정작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데 몰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엔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고 충분하게 표현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좋다. 글쓰기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 없이 충실한 글을 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반면 초등 고학년 학생의 경우 자유로운 표현과 함께 올바른 표현과 적절한 구성에 대한 지도가 필요하다. 또한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 문제의식을 갖고 글을 쓰도록 지도하기에 알맞은 시기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이 시기 주요한 논술 지도 방법을 살펴본다.

# 명확하고 올바른 문장 쓰기부터 시작하자
문장을 쓸 때는 무엇보다 주어와 서술어를 빠뜨리면 안 된다.
'명문대에 가기 위해 10년이 넘는 기간에 내신이다, 논술이다 하면서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미친 듯이 공부만 해대는데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위 문장엔 주어가 없다. 누가 공부만 해대는 것일까. 아마도'우리나라 학생들은'이란 주어가 생략됐을 것이다. 문장의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주어와 서술어가 모두 필요하다.
주어와 서술어가 모두 있지만, 이 둘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역시 명확하고 자연스러운 의미 전달을 방해한다. '빌 게이츠와 하인스 워드의 공통점은 어렸을 때 힘들게 자랐다.'
이 문장의 주어가 '빌 게이츠와 하인스 워드는'이라면 '힘들게 자랐다.'라는 서술어는 주어와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빌게이츠와 하인스 워드의 공통점은'이 주어라면 '힘들게 자랐다는 점이다'라고 고쳐야 한다.
가까운 위치에서 같은 어휘를 반복 사용하는 것도 좋지 않은 습관이다. 이러한 문장은 글이 다듬어지지 않고 빈약하다는 느낌을 준다.
'돈이 없다면 행동으로라도 돕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돕는 것이 좋을 것이다'를 '돕는 것이 좋다'로 쓰는 것이 어휘 반복도 피할 수 있고 문장도 깔끔하다.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는데 적절한 문장 길이에 대해서는 30자, 50자, 60자 등 다양한 의견이 있다. 논술문은 명확한 의미 전달이 중요하므로 가급적 짧은 문장을 권한다. 하지만 다양한 글쓰기를 익히는 과정에 있는 초등생의 경우 논술문이라 해도 60자를 넘지 않는 정도면 무난하다.
수동형 문장이 아니라 능동형 문장을 쓰도록 지도할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이렇게 하면 글이 체계적으로 정리될 수 있다.'라는 문장은 수동형 문장이다. '이렇게 하면 글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능동형 문장이다. 후자가 전자보다 이해하기 쉽고 명확하다.

# 제대로 된 문단을 쓰자
대부분 학생은 일기 쓰기를 통해 긴 글쓰기를 익힌다. 그러나 일기를 쓰면서 엄격히 문단 구분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흔히 한 문장이 한 문단이 된다. 초등학교 저학년 내내 문단의 개념조차 없이 글을 써온 것이다. 하지만 고학년이 된 이제는 문단에 대한 개념 이해를 바탕으로 올바른 문단 쓰기를 시작할 때다.
문단 쓰기를 익히기에 앞서, 올바로 쓰인 문단에서 중심 문장과 뒷받침 문장을 찾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글의 핵심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독해력을 기르면서 문단 구성의 원리를 내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 수록된 글을 대상으로 이러한 연습을 반복한다면 교과서를 읽는 방법까지 터득할 수 있다.
다음은 5학년 국어 읽기 교과서에 수록된 문단이다. 밑줄 그은 문장이 그 문단의 중심 문장이다. 나머지 문장들은 중심 문장을 뒷받침하여 설명하고 있다.
숲은 썩는 것을 막는 성질이 있어 음식과 함께 놓아두기만 해도 음식을 쉽게 썩지 않게 해 준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광에 늘 숯을 넣어 두었다. 며칠씩 준비한 제사 음식을 광에서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여기 있다.
그리고 숯은 습기를 없애는 기능도 한다. 옛날에는 습기를 없애기 위하여 기초 공사를 할 때 집터에 숯을 묻었으며, 숯의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 문화유산도 보호했다. 75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현대 과학으로도 이해되지 않으리만큼 훌륭한 상태로 보존된 것은 숯과 소금 덕분이라고 한다.

읽은 문단에서 찾은 중심 문장만을 따로 정리한 후 원래 글을 보지 않고 각 중심 문장에 학생 스스로 뒷받침 문장을 써보게 한다. 이것은 중심 문장과 뒷받침 문장 간의 관계를 명확히 인식시키는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문단 구성 원리를 터득했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특정 주제나 소재에 대해 스스로 여러 개의 중심 문장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서 정리한 중심 문장 각각에 뒷받침 문장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문단 쓰기 연습을 마무리한다.

# 무조건 쓰지 말고 먼저 글의 흐름을 구상하자
설명글이나 논술문의 경우 본문을 쓰기 전에 개요를 작성해 글의 흐름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 글 전체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고, 체계적 논리 전개도 가능하다.
개요를 짤 때 마인드 맵을 이용할 수도, 항목과 문장 개요를 작성할 수도 있다. 마인드 맵을 이용할 경우 개요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내용을 추가하거나 삭제하기가 쉽다.
항목 개요를 작성할 경우 글의 흐름을 간략하게 한눈에 볼 수 있다. 문장 개요를 작성할 경우 대체로 문단별 중심 문장을 작성하게 되므로 본문을 작성할 때는 편리하고 정확하다.

써야 할 글의 분량이 많을 경우, 이 3가지 개요 작성 방식을 순차적으로 모두 적용할 수도 있다. 즉, 마인드 맵으로 글에 포함할 내용을 간략히 정리한 후 항목 개요를 통해 순서를 잡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장 개요를 작성하면서 문단별 중심 문장을 정리하는 것이다.
3가지 개요 작성 방식을 다양하게 적용해 보면서 자신이나 상황에 맞는 개요 작성법을 터득하자.

#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답을 구하자
비판적 사고를 기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제시한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독서 후 또는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문제(토론 주제)를 찾아 정리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지도한다면 적극적 태도도 길러줄 수 있다.
스스로 제기한 문제의 답을 구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탐색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논술문에서 필수적인 설득력 있는 근거 제시 능력은 물론이고 능동적인 학습자로서의 자세도 갖추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에게 권할 만한 단계적 논술교육 방법을 알아봤다. 이 시기가 논리적 글쓰기에 입문할 수 있는 인지 능력을 갖춰가는 시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자신만의 감상을 주관적으로 진술하는 감상글 쓰기도 중요한 시기다. 정서나 창의성 발달 측면에서 그렇다.
논술 능력은 입시를 통과하거나 대학 수학만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근본적인 필요는 학생 자신이 살아갈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는 데 있다. 현실의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논증력·창의력·인성이 모두 요구된다. 논술 교육이 행해지는 장소가 가정이든 학교든 학원이든, 적절한 교육 내용과 방식을 적용한다면 지혜롭고 유능한 논술형 인재가 넘쳐날 것이다. 02-2104-8600,www.readinggame.co.kr

심유미
대성독서논술연구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