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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맛집] 서울 일원동 옹기전 황태칼국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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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점이 있다면 천리길도 마다않고 달려가는 나. 노란 황태로 맛있는 칼국수와 해장국을 만들어내는 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한 시간 넘는 지하철 여행을 단행했다. 덜커덩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머릿속은 온통 황태뿐이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일원역(1번출구)과 대청역(4번출구) 중간에 위치한 '옹기전 황태칼국수(02-445-1411)'. 식당에 들어서니 10여평의 공간에 통나무 의자와 창호지를 바른 문이 눈에 들어왔다.

영락없이 사극(史劇)에 등장하는 주막 분위기다. 손님 식탁에 있는 까슬까슬한 옹기들도 소품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황태 해장국이랑 황태칼국수 한그릇씩 주세요."

주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큼지막하게 버무린 깍두기와 손으로 쭉쭉 찢어먹어야 제 맛이 날 것 같은 김치가 등장했다. 깍두기는 사각사각 새콤하게 씹힌다. 배추김치는 알맞게 익었다.

'둘 다 훌륭한 반찬 구실을 하겠군.'

입맛을 다시던 중 황태칼국수와 황태해장국이 식탁에 올랐다. 허연 김을 뿜어내는데 앞에 앉은 친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우선 밥부터 한술 떴다. 윤기가 흐르고 쫀득한 게 여느 음식점의 공기밥이 아니다. 제법 좋은 쌀을 사다가 쓰는 모양이다. 주방 옆에 쌀 부대가 키만큼 쌓여있다. 밥맛을 음미하는 동안 김 속에 숨어 있던 칼국수와 해장국의 자태가 드러났다.

황태 해장국에는 황태만 있는 게 아니었다. 홍합.굴.바지락.새우 등 온갖 해산물에 팽이버섯.콩나물.쑥갓도 들어가 있다. 속풀이에 좋다는 것은 모두 넣은 모양이다.

그래도 주인공인 황태의 속풀이 능력을 따라 갈 수 없는 법. 겨우내 얼고 녹는 인고의 세월을 지나 살이 노랗게 변한 황태를 골라 국물과 함께 입에 넣으니 시원한 맛이 피부의 실핏줄까지 와닿는 듯했다.

칼국수 맛도 그만이다. 오징어.굴이 보이고, 부추도 들어가 있다. 면발의 쫀득거림이 특이하다. 쌀가루를 섞어 뽑아서 그렇다고 한다.

이 집에서는 주인 부부가 수시로 돌아다니며 칼국수도 더 담아주고, 밥이 부족하면 공짜로 한 공기 더 챙겨준다. 넉넉한 마음을 지닌 곳이란 생각이 든다. 식사가 끝날 무렵 은박지에 싼 군고구마가 나오는데, 이미 배가 부른데도 "고구마 들어갈 위는 따로 있다"며 합리화할 만큼 거부할 수 없는 후식이다.

일원동의 먹자골목 끝자락에 있어 가는 도중에 다른 음식점들의 현란한 유혹을 애써 뿌리친 보람이 있었다.

이은주(대학생.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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