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해결사없는 전쟁(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후닥닥 해치울것 같던 걸프전쟁은 한달이 가까워와도 아직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분에 한차례씩 억수로 폭탄을 얻어맞은 이라크가 그래도 전투장비의 10%밖에 잃지 않았다는 외신도 있었다. 그러나 더 놀랄 일은 죽었습니다 하고 모래속에 엎드려 시간가기만 기다리고 있는 후세인의 배포다.
다국적군의 기막힌 첨단무기에다,우리나라까지도 구렁이 알같은 돈을 추렴해 전투비를 보태준 여유만만한 전쟁인데도 후세인의 두더지작전앞엔 달리 뾰죽한 묘수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시간이다. 시간을 끌다가 어느날 지상전이 벌어져 사상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 세계의 시선은 지금과 같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국적군이 물러서는 경우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사태가 이쯤되면 미국과 이라크의 중간에 누가 나서서 싸움을 말릴만도 하다. 이라크가 우선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는 선에서 어느 정도 체면을 살려주는 안은 있을 수 없는 것일까.
일이 풀리려들면 우연찮게 계기가 생기는 수도 있다. 바로 30여년전 일이 생각난다. 이른바 쿠바위기때의 얘기다.
소련은 미국에서 불과 90마일 떨어진 쿠바 영토안에 1천마일이상의 사정거리를 가진 미사일의 기지를 무려 26기나 만들고 있었다. 미국의 U2정찰기가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세계에 공개했다. 자신의 턱밑에 폭탄을 들이대는데 가만히 있을 나라가 없다.
한때는 미소,두 나라가 전쟁을 정말 벌일 작정인것 같았다. 그 무렵 우연히도 미국 ABC방송의 국무부 출입기자인 존 스칼리가 주미 소련대사관의 A 포밍고문과 점심약속이 있었다. 바로 그 점심이 「전후 세계 최대의 위기」를 푸는 단서가 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미국과 월맹이 무려 14년동안이나 죽자 사자 싸워온 베트남전쟁때도 막후에서 집요하게 싸움을 말리는 소련과 중국이 있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전쟁도 결국은 미국이 막후에서 팔걷고 나서서 끝을 냈다.
지금 걸프전쟁은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해결사가 없다. 앞뒤 사정으로 보아 소련이 나서면 제격인데 자기코가 석자도 넘게 빠져 있다. 요즘 이란이 왔다 갔다 하지만 여기에 따를 나라는 없는 것 같다.
해결사없는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걸프전도 그것이 걱정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