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이 갖는 다양한 색깔/김경동(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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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을 떠나기 하루 전날 공중폭격으로 시작된 걸프전쟁은 이제 스무날째로 접어들었다.
이곳 파리를 비롯한 서방세계의 신문과 방송은 연일 전쟁 특집으로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전황은 곧장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될 듯한 긴장감만 고조시킨채 사뭇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유럽,특히 프랑스의 지성과 언론이 포착하고 분석하는 이번 전쟁은 여러 각도에서 종래와는 매우 다른 복잡미묘한 색깔을 띠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신앙과 기술」의 전투
첫째,이 전쟁은 「신앙과 기술의 전투」라는 시각이 특이하다. 영국의 BBC 방송이 인용하는 이라크의 라디오 해설자는 이렇게 선언한다. 『아랍과 회교국가들의 역사적 운동이 우리의 무기인 반면 저들의 무기는 컴퓨터와 전자기술이다.』 이곳에서 접한 신문 보도사진 중에는 이같은 대조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 있었다.
요르단의 광활한 사막 한복판,다른 유목민과는 40리이상 떨어진 외딴 천막에서 양을 치며 사는 40대 남자는 신문에서 오려낸 사담 후세인의 사진을 천막 벽에 붙여 놓고 있다. 그에게 후세인은 「구세주」이고 부시는 「사탄(악마)」이며,파드와 무바라크는 「배신자」들이다. 부시나 「스커드」는 지난 여름까지만해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름들인데,그는 갓태어난 아기양에게 아랍식 발음으로 「스커즈」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다.
한편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최전방 진지에서 우람한 전차뒤에 숨어 앉은 미군 장병들은 무릎위에 놓고 쓴다는 휴대용 「랩 톱」컴퓨터로 열심히 작업을 하는 모습이다. 컴퓨터·레이저·레이다 등 자동화 최첨단기술 장비를 갖춘 각종 기기·무기들은 이라크·쿠웨이트 전선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거니와 사실 이들 대다수는 지금까지 실전효능을 시험해 보지 못한 신예무기들이다.
물론 이들과는 상대가 되기 어렵지만 이라크도 미국·소련·독일·프랑스·영국 등 선진국에서 사들인 최신 무기와 장비를 자기들나름대로 가지고 있으며,화학·생물·핵전쟁도 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었다. 따라서 이번 전쟁은 그 기술적 수준만으로도 가공할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닌다. 현재로서는 연합군의 기술우위가 전세를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이끌고 있으나,특히 지상전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는 기술이외의 요인이 부각될 수 밖에 없다.
○인간적피해 성찰필요
둘째,그것은 바로 인간적 요소다. 전쟁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하는 것인데 적어도 이라크쪽의 주장은 자기들은 성전을 치르고 있으므로 군사들의 사기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점에서도 조심스럽게 보도되고 있는 연합군측 병사들의 심리상태와는 일단 대조를 이룬다. 이들도 물론 의무감과 직업의식이 투철하고,모처럼 애국심을 발휘하고 가치있는 이념을 위해 싸울 기회가 왔다는 긍지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종군기자들이 살얼음 걷듯이 보도하는 바에 따르면 불안과 두려움,말하기 어려운 의구심의 그늘이 깃들인 진솔한 인간적인 정감이 여실히 엿보임을 부인할 수 없다.
월남전·포클랜드전 이래 한번도 실전경험이 없는 서방측 군사들에게는 자연스런 느낌이겠지만 일부에서는 『정치인들의 쓰레기를 우리가 치우러 왔다』느니 『요는 석유싸움 아니냐』는 등 냉소적 체념의 소리도 들린다.
여기에 서방과 아랍 각국에서는 반전시위가 잇따르고 테러에 대한 공포로 경계가 심하며,실제로 여행자의 수가 격감하여 항공·관광업이타격을 입고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술적 위력이 가져올 인간적인 피해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전쟁의 의미를 더욱 신중히 성찰하게 한다.
셋째,이번 전쟁은 하나 밖에 없는 지구의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측면마저 보이기 시작함으로써 전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미 걸프해로 흘려 보낸 원유는 생물들에 피해를 주고 어업에 지장을 초래할 뿐더러,사우디아라비아의 식수원을 오염시킬 위험도 안고 있다.
유전폭파로 인한 연기때문에 이란에서는 그으름 섞인 비가 내렸으며,앞으로 만일 화학·생물·핵무기까지 전쟁에 실제 동원된다면 그 생태적 영향은 중동에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로 번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이 전쟁은 더욱 조심스럽다.
넷째,그러한 터에 이번 전쟁을 둘러싼 세계 각국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는 참으로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게 또하나의 특색이다. 미국과 영국이 이 전쟁에 개입한 이유에 관해서는 갖가지 해석이 나돌지만,일단 국내 여론은 전쟁지지 80%를 육박하는 방향으로 잡혀 있고 오랜만에 국민적결속을 다짐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 군수산업은 다시 활기를 찾고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월남전의 쓰라린 기억이 되살아나는 상황이 전개되기만 하면 여론이 급속하게 냉각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전쟁에 얽힌 국제관계의 매듭은 우선 애당초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점령한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로부터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하겠지만 이 또한 역사와 정치경제적 근원이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전후 새질서에 더 관심
그런가하면 직접 참전하지 못하는 독일만해도 『전쟁은 전쟁,장사는 장사』라는 한 사업가의 말대로 아주 묘한 자세를 취한채 미국과 이스라엘의 눈치 살피기에 바쁘다. 거액의 지원금을 제공하는 일본도 그돈으로 무기는 살 수 없다는 모호한 조건을 달고 있다. 소련과 아랍제국 및 이스라엘등은 전후의 아랍권세력 재배치와 이른바 부시의 「신세계 질서」의 향방에 더 관심이 크다.
아랍계 인구 3백만명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프랑스는 또 그나름대로 아랍과의 역사적·정치경제적 관계로 미루어 독특한 시각을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아랍권의 전통과 문화,서방과의 역사적 상호작용의 성격등에 대한 깊은 이해없이 이번 전쟁에 임하는 것은 상당한 모험을 수반한다는 견해는 주목할만하다.<파리에서><서울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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