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땐 선진 문명이 좋았는데 나이들수록 동남아 세계에 매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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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앙드레 김(73)의 환상적 의상이 신비의 사원 앙코르와트를 감싼다. 11, 12일 오후 7시 앙코르와트 사원 특별무대에서 열리는 '앙드레 김 패션쇼-판타지아'다. '앙코르.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06'의 특별행사로 마련됐다. 세계문화유산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앙코르와트에서 패션쇼가 열리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앙코르.경주 엑스포 통콘(Thong Khon) 캄보디아 측 단장은 "세계적 디자이너들이 앙코르와트에서 패션쇼를 열고 싶어 했지만 앙드레 김을 선택했다"며 "그는 엑스포의 주제인 '오래된 미래-동양의 신비'를 가장 절묘하게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이너"라고 말했다.

이번 쇼는 그의 해외 패션쇼 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도 주목받고 있다. 앙드레 김은 1966년 파리 에펠탑에서 국내 디자이너로는 처음 해외 패션쇼를 열었다. 그동안 40여 차례의 해외 패션쇼를 통해 한국의 아름다움을 해외에 알리는 문화대사 역할을 해왔다. 연예인 못잖게 대중적 지명도가 높은 그는 최근 아파트 인테리어나 가전제품 디자인에까지 영역을 확대하면서 '문화브랜드 가치'를 높여가고 있다.

8일 오후 서울 신사동 '앙드레 김 아뜰리에'에서 미리 만난 그는 "신들의 정원 앙코르와트를 배경으로 신라와 크메르의 환상적인 대서사시를 연출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벅차다"며 말문을 열었다.

-40번째 해외 패션쇼 무대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택한 이유는.

"훈센 총리 등을 비롯한 캄보디아 측에서 나의 패션쇼를 원했다. 화려한 조각과 건축으로 아름다움을 한껏 꽃피운 크메르 왕국이 우리 신라와 공통점이 많은 것에도 끌렸다. 사실 젊은 시절에는 선진국 문명이면 무조건 좋은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동남아시아.인도네시아.티베트 등이 좋아진다. 그쪽 의상들에는 신체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주는 자연스러움이 살아있다. 그들의 고요한 정신세계에도 점점 매료된다. 앞으로도 더욱 아시아적 가치를 고수할 생각이다."

-해외 패션쇼 40주년의 소감은.

"1966년 파리의상조합 초청으로 에펠탑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그때만 해도 국내에서는 '한복 대신 간소복을 입자'는 캠페인이 열릴 때였다. 이후 130회가 넘는 패션쇼를 열었다. 1988 서울올림픽부터 2000 시드니올림픽까지는 연속 4회에 걸쳐 조직위원회의 초청으로 올림픽 기념 패션쇼도 열었다. 해외 쇼들은 전부 주최 측이 경비를 부담했다. 내 의상 속에 드러난 한국의 아름다움, 한국의 신비감을 그들이 높이 샀다는 거다."

-의상이 중심인 일반적 패션쇼와는 조금 다르다.

"내 무대는 '패션종합예술'이라고 이름붙인, 나만의 장르다. 고전음악이나 오페라는 당연히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만 패션은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아쉬웠다. 그래서 패션으로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하고 싶었다. 모두가 내 옷을 입진 못하지만 내 쇼를 보면서 감동을 받는다면 그것이 바로 패션예술이 공감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40년간 한결같은 패션세계를 선보였다.

"나보고 변화가 없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트렌드, 유행을 따르지 않을 뿐 지금까지 같은 의상을 내놓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유행을 좇아서, 팔리는 의상을 하는 것을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한다. 실제 생활에서는 입을 수 없지만 아름다움, 역사성, 창의성에 공감해주길 바라는 거다."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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