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달려라 바크' 40여년 만에 재출간 이향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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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라와 만화를 그리면서 하숙집에서 포인터를 길렀어요. 집주인도 개를 좋아해서 이해를 해줬지만 사냥개 종자라 어찌나 날뛰고 말을 안듣던지. 결국 단골 수의사에게 얘기를 해서 세퍼트와 바꾸기로 했는데, 데려가기로 한 날 녀석이 웬일로 얌전히 앉아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거예요. 지금도 그 눈을 잊을 수가 없어요.”

시절이 바뀌어 갖은 치장과 호사로 대접해야 하는 상전이 됐어도 기르는 개와 사람 사이의 끈끈한 정은 밥그릇 하나면 식구로 삼을 수 있던 때와 그리 달라지지 않은 듯 했다.

'달려라 바크'의 재출간을 핑계삼아 찾아간 만화가 이향원(59)씨의 작업실에서는 자연히 그가 정을 줬던 개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했다.

잭 런던의 소설이 원작인 '달려라 바크'(도서출판 G&S.7천원)는 대저택에서 귀염받던 개가 정원사의 속임수에 넘어가 알래스카에 팔려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지난해 같은 출판사에서 복간한 대표작 '이겨라 벤'(전3권.각 7천원)에서처럼 바크 역시 갖은 역경을 겪으면서도 주인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

대구 출신인 작가는 10대 시절인 1960년에 데뷔, 어느새 만화인생 40년을 훌쩍 넘겼다. 스포츠 만화로도 필명을 떨쳤지만 번번이 다시 불려나온 것은 그의 동물만화들이다. '달려라 바크'와 '이겨라 벤'은 60, 70년대 각각 '황야는 부른다''투견'이라는 대본소용 만화로 처음 발표됐다가 80년대 '소년중앙''보물섬'등에 연재되면서 지금의 그림체와 제목으로 다시 그려졌고, 그 중 '이겨라 벤'은 90년대 초 어린이 신문에도 다시 실릴 정도였다.

"그 당시 남자아이들은 순정만화를 건드리지도 않았고, 여자아이들도 활극은 전혀 보지 않았어요. 개는 어린이들 누구나 좋아하니까 남녀 독자 모두가 볼 수 있겠다 싶었죠."

말광량이 소녀 '꼭지'가 단골 주인공이 된 것 역시 액션 장면이 많은 그의 만화에 남녀 모두 관심을 갖도록 하려는 생각이었다. 사실 그의 만화는 투견(鬪犬)을 다룬 '이겨라 벤'이나 썰매견이 등장하는 '달려라 바크'나 싸우고 달리는 개들의 생동감 넘치는 묘사가 흥미를 돋우는 중요한 요소다. 여기에 희생과 헌신을 주고받으며 사람과 개가 희로애락을 나누는 줄거리, 아무리 나쁜 사람도 뉘우칠 기회를 주는 식의 전개는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그의 만화를 어린이 추천물로 첫손 꼽게 한다.

이런 활달한 개들을 품기에 아파트 위주로 바뀐 살림살이는 역부족일까. 작업실 문을 들어설 때부터 혹시나 하고 두리번거린 기자에게 작가는 개를 기르지 않은 지 여러 해가 됐다고 했다. 그는 90년대 중반 이후로 상업 만화잡지 연재는 모두 그만뒀지만 '소년''새벗''내친구들'같은 비영리잡지에는 최근까지 길게는 20여년, 짧게는 10여년간 꾸준히 '시튼동물기'등의 작품을 실어왔다.

요즘은 그런 연재마저 쉬는 대신 새로운 작품 준비에 한창이다. 맹인 안내견과 장애인 유도선수 소년이 주인공이어서, 그의 장기인 어린이.스포츠.동물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셈이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장애인들 얘기도 직접 들어봐야 하고." 그러나 책상에는 하늘색 색연필로 그려진 원화가 이미 여러 장이다. "국내에 있는 안내견 기르는 곳에 취재를 갔었어요. 그 놈들 눈망울이 어찌나 선해 보이던지."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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