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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유인가 의원외교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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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누구를 위한 외유인가. 또다시 국회의원들의 무더기 외유가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모양이다. 23% 세비 인상에 이어 계속되는 여야의 협조관계를 굳이 나무랄 생각은없다.
그러나 1백일 가까이 계속됐던 사퇴정국의 여파로 국정현안은 물론 예산안조차 제대로 심의하지 못한 채 또한번의 날치기 통과로 대미를 장식한 국회가 끝나자마자 허겁지겁 떠나는 것같은 외유는 아무래도 모양이 사납다.
더구나 일설에 의하면 1백명 가까운 선량들의 무더기 외유중 상당수가 남아도는 의원외교예산을 처리하기 위한 「유람성 외유」라 하니 더욱 마땅치 못하다.
필자의 관심은 외유를 바라보는 국민대중의 비판적 시각과 그것에 내재해 있는 국회 및 제도권 정치세력들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있다.이런 비판적 인식의 배후에는 분명 국민의 70%이상이 「정치인을 가장 싫어하고 믿지 못한다」는 최근의 충격적인 조사가 반영하고 있듯이 제도정치권에 대한 국민대중의 광범위한 불신과 반발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어쩌다 이렇게 되였는가」 라는 한탄은 그래도 조금은 여유있는 자기반성일수 있겠다. 이럴때는 좀 작위적인 느낌이 있지만 「내 탓이오」하고 외치고 다닐 수도 있을 터다. 그러나 사태는 그런 한가한 상태를 넘어 이미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최근 보도된 한 조사는 한국정치의 이런 심각한 위기국면을 좀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갤럽연구소가 미국·일본·유럽등 17개국과 공동으로 실시한 가치관 및 국민의식조사에서 한국국민의 85%가 어떤 형태로든 현상황의 변화를 원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가장 불행하게 느끼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 참가한 나라들 대부분이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느냐는 식의 반론은 그만두자. 그런 치졸한 발상은 우리를 더욱 바참하게 만들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도권 정치세력들이 자기들 월급이나 올리고 무더기로 유람섬 외유나 한대서야 어디 말이 되는가.이쯤되면 의원들의 외유가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실로 당연하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의원 몇사람의 외유가 아니라 의원외교마저 국민대중으로부터 빈축을 사게된 제도권 정치세력들의 무능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종류의 실책을 되풀이하고 있는 정치권의 무감각에 었다.
한국정치는 이미 되돌릴수 없을만큼 깊숙하게 국민정치시대로 돌입했다. 좀 우스운꼴로 전락해버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다양한 수준에서 모색되고 있는 이른바 정계개편을 위한 제도권 정치세력들의 이합 집산과 합종연횡 및 지방자치시대의 개막이 그러하다. 그러나 제도권 정치세력만은 아직 이 국민정치시대라는 정치적 대세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국민대중의 정치의식과 제도권 정치세력들의 정치력 사이에 존재하는 현격한 간격은 갈수록 넓어지기만 한다.
총체적 난국이란 바로 이런 한국정치의 현실을 이름에 다름 아니다.
이제 다시 최초의 물음으로 돌아가 보자.과연 누구를 위한 외유인가. 국민의 세금으로 당당하게 다녀올만큼 국가 이익과 국민대중의 이해향상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초당적 의원외교인가.아니면 세간의 비판처럼 「그저 한번나갔다 오는」 것인가. 선량들의 진솔한 대답이 기다려지는 대목이다.
고성국<고려대강사·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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