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로봇도 나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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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로봇은 전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전쟁에 로봇을 투입했다고 해도 서너시간 지나면 배터리가 다 닳아 더 이상 임무 수행을 못한다. 병사 대신 적진을 관측하고, 공격할 로봇을 개발하는 과학자들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들판에 있는 풀이나 하수도에서 콸콸 쏟아져 나오는 하수를 원료로 전기를 생산해 작동하는 로봇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배터리 걱정을 덜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 스튜어트 윌킨슨 박사팀은 풀을 먹고 움직이는 로봇 개발에 나서고 있다. 풀을 먹으면 로봇 뱃속에 있는 대장균 등 미생물이 풀에 있는 여러가지 영양분을 분해할 때 나오는 전기를 로봇 동력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윌킨슨 박사팀은 이미 2001년 설탕물을 먹고 움직이는 기차형 로봇 '추추'를 개발해 국제로봇학회에서 공개, 풀을 먹고 사는 로봇의 개발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추추는 12개의 바퀴가 달려 있으며,위에는 박테리아가 들어 있다. 여기에 설탕물을 주면 박테리아가 설탕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전기를 만든다. 이른바 미생물 전지다.

미국 MIT대는 바다 펄에 대량으로 사는 지오박터라는 미생물이 펄 속의 음식물 찌꺼기, 생물의 사체, 톨루엔 같은 유기합성화합물 등 다양한 유기물을 분해해 전기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기서 나오는 전기로 꼬마전구나 컴퓨터를 켤 수 있을 정도다. 이런 미생물전지를 이용하면 일상에서 사용하는 전지를 이용하지 않아도 펄에서 전기를 만들며 해안을 순찰하거나 해양 환경오염 정도를 감시하는 로봇 개발이 가능한 것이다.

미생물 전지는 환경오염 측정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로봇용 배터리의 개발이 시작 단계라면 환경오염 측정은 이제 상용화단계에 접어들었을 정도로 발전했다.

한국바이오시스템㈜ 현문식 박사팀은 미생물 전지를 이용해 생물화학적 산소 요구량(BOD)을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미생물이 오염된 물의 유기물을 분해할 때 만드는 전기의 양으로 BOD를 측정하는 것이다. 보통 BOD는 정확히 측정하기 어려우며, 실험실에서도 3~5일이나 걸린다. 그러나 현박사팀이 개발한 BOD 측정장치는 물을 미생물 전지에 집어넣는 순간 BOD의 정확한 값을 알아낸다.

전지 안의 미생물이 물에 섞인 유기물의 양에 따라 생산하는 전기의 양에 차이가 난다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음식물 찌꺼기 등이 많으면 전기가 많이 생산되고, 깨끗할수록 그런 찌꺼기가 없어 전기가 적게 만들어진다.

이를테면 미생물이 만드는 전류가 0.35㎃(밀리 암페어)인 상태가 5시간 정도 지속되면 BOD를 80ppm으로 판정한다. 오차는 1~2% 이내. 이처럼 정확한 BOD 측정장치는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다. BOD 측정 역사가 1백년 가까이 되지만 아직 이처럼 정확한 측정 방법이 나오지 않아 아예 이 기준을 없애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는 상태다.

독극물 경보에도 활용할 수 있다. 독극물이 미생물 전지에 들어오면 미생물이 죽거나 그 수가 급속하게 줄어 생산되는 전기의 양도 덩달아 감소한다. 이런 변화를 감지함으로써 독극물 유입의 즉각 경보가 가능한 것이다. 현재는 물벼룩 등을 이용한 경보체제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물벼룩은 고농도의 독극물이 들어오고, 시간이 걸려야 알아챌 수 있는 등 단점이 많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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