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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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레이건대통령이 재선에 출마하자 그의 나이가 문제가 되었다. 70을 넘은 노령에 비해 경쟁자인 먼데일은 17세나 젊었다. 사람들은 레이건이 그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했다. 기자들이 물었다. 『각하,케네디대통령은 쿠바사태때 며칠밤을 새우며 직무를 수행했는데 각하는 그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그 질문속에 담긴 뜻을 모를 레이건이 아니었다. 『나는 선거에서 이길 목적으로 상대후보의 젊음이나 경험부족을 이용할 생각은 없소이다.』 이 한마디로 먼데일은 나이에 관한한 납짝해지고 말았다.
미국사람들은 레이건이 집권하는 동안 다른 것은 몰라도 마음 하나는 편안했다는 말들을 한다. 그의 말에 특징이 있었다면 무슨 말을 해도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머를 잊지 않았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꼭 치러야 하는 시험이 있다. 「디베이트」로 불리는 공개토론회에서의 면접시험이다. 이때 채점하는 기준이 있다. 첫째 분석력,둘째 추리력,셋째 표현력,넷째 증거제시력,마지막으로 조직력. 이 가운데 조직력 하나를 빼놓고는 모두 말 재간과 관련이 있다.
말 재주로 치면 J F 케네디대통령을 당할 정치인이 없을 것이다.
그의 말은 어느대목을 잘라 놓고 보아도 보석처럼 빛났고,금방 명언사전에 옮겨 놓아도 될만했다. 그런 지적인 대통령을 가진 것을 국민들은 굉장한 긍지로 생각했다. 또 어떤 긴박한 상황에서도 유머로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칼럼니스트 휴 시드니가 한말이 있다. 『대통령의 유머는 단순한 개그 이상의 깊이가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위대한 이상과 정치에 대한 이해,그리고 지성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미국만은 못해도 대통령이 자주 기자회견에 나타난다. 좋은 일이다. 더구나 이제는 옛날처럼 미리 각본을 써놓고 겉으로 기자회견하는 시늉만 내던 경우와도 다르다. 기자들의 현장질문에 대통령은 그자리에서 적절한 답변을 찾아야 한다.
일찍이 처칠이 한 말이 생각난다. 정치인은 『무슨 말을 하든 내일,내주,내월,내년에 무엇이 일어날지 예언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 왜 그 예언이 맞지 않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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