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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따라 가지가지"장아찌 마술사"|친정어머니 기억 더듬어 비법재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밑반찬의 대표격인 장아찌는 주부들의 반찬 걱정을 덜어주는 우리식탁의 든든한 살림꾼이다.
이 같은 살림꾼인 장아찌를 자그마치 25가지나 거느린(?)방성순 여사(68·서울 송파구문정동시영아파트7동1405호)는「장아찌 할머니」로 불린다.
어느 가정에서 볼수 있는 무·깻잎·마늘쫑 장아찌는 물론 은행·토란 대·김·조개·수박·갓·배추·대추·부추에 이르기까지 일단 그의 손을 거치기만 하면 장아찌로 변신해 누구든지 입맛을 다시게 만들고 만다.
『우리 집 양반(이준원·전염업 조합이사장·76년 작고)이 살아 계실 때는 30여가지 장아찌를 만들어 두곤 했지요. 봄이면 부추·씀바귀·도라지·무·더덕으로, 여름이면 오이·수박·배추로, 가을이면 깻잎·토란·고추·밤·은행·대추로 장아찌를 담갔어요.
귀한 손님이 오면 특별히 호두장아찌·북어장아찌·대추장아찌·된장 깻잎장아찌를 상에 올리곤 했는데, 무척들 좋아하셨지요.』
지금은 슬하의 4남2녀를 모두 출가시켜 혼자 살고 있는 방 여사는 이제는 절기에 관계없이 식품이 생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제철」을 찾아 장아찌를 담가두었다가 알맞게 곰삭으면 자녀들과 친지에게 나눠주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장아찌를 담그는 요령은 크게 세 가지. 고추장이나 된장, 또는 간장을 이용하는 것이다. 망사자루에 장아찌 재료를 넣은 다음 고추장 등에 파묻어 두었다가 일정기간이 지난 후부터 먹기 시작하는 것이 일반원칙. 장아찌용 된장이나 고추장은 늘 따로 준비해두는 것이 그의 철칙으로 돼있다.
수박 장아찌의 경우 먹고남은 껍데기에서 분홍색 살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속을 다 긁어낸 다음 바깥 쪽 껍질을 벗겨내고 알맞은 크기로 잘라 말린다. 이것을 장아찌용 된장에 박아두었다가 한 달쯤 지나 누렇게 곰삭으면 마른 행주로 된장을 닦아내고 다시 고추장에 넣어두었다가 꺼내 먹는다. 상에 올릴 때는 설탕·참기름만 넣어 무치면 윤기가 나서 더욱 맛깔스럽게 보인다.
간장에 담그는 고추장아찌의 경우 고추에 바늘로 3개의 구멍을 낸 뒤 간장을 붓는다. 고추가 잠길 만큼의 양을 붓고 3일이 지나면 꺼내 식초3술·정종(소줏잔)한잔·설탕 1컵과 고추를 담가두었던 간장을 섞어 끓인 다음 식혀서 다시 부으면 된다.
재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나는데 조개장아찌는 산 조개를 전 젓국에 삭여 노랗게 되면 그 국물에 고춧가루를 물어 담고, 부추는 사이다에 식초를 조금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춰 절인 다음 고추장에 넣는다는 것.
그의 장아찌 솜씨는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러 받았다. 50여가지가 넘는 장아찌가 늘 식탁에서 떨어지는 날이 없었던 기억을 갖고 있는 그는 21세 때 시집온 후 기억을 더듬어가며 장아찌를 만들었다.
『우리가정에는 밑반찬이 있어야 돼요. 갑자기 손님이 들이닥치면 밑반찬 없이 상차리기가 어렵지요. 특히 요즘같이 물가가 비싼 겨울에는 몇 만원을 들고 시장에 나서봐야 반찬 차리기가 어렵잖아요.』그는 요즘 젊은 주부들이 밑반찬 장만에 등한한 것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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