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발표문 싱크로율 높았다…북핵·대만 평행선에도 협력 강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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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선 민감한 현안을 둘러싼 이견을 다시 확인했지만, 양국 모두 관계 관리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 장관은 '난관', '어려움', '도전' 등을 언급하면서도 이를 극복하는 데에 방점을 찍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줄곧 냉랭하던 양국 관계의 기류가 바뀔지 주목된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13일 오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악수하는 모습. 외교부.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13일 오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악수하는 모습. 외교부.

中 뒤통수 없이 싱크로율 높였다

이날 회담 후 양국 외교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중 관계의 개선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 외교부는 "양측이 한·중 관계를 건강하고 성숙하게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한 점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도 "중·한 사이에는 근본적인 이익 충돌이 없다"며 "최근 양국 관계가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은 양측의 공동 이익에 부합하지 않고 중국이 바라지도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앞서 2022년 8월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이 중국 산둥성 칭다오를 찾아 왕 위원과 만났을 때는 회담 바로 이튿날 중국이 '3불 1한(三不一限)' 등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와 관련한 일방적인 주장을 또 들고 나오며 사실상 뒤통수를 쳤다. 이번엔 이런 몽니가 없었을 뿐 아니라 양국 발표문의 '싱크로율'도 비교적 높았단 평가다.

중국이 한국 외교장관을 6년여 만에 베이징으로 초청한 것 자체로도 의미가 상당하다는 분석이다. 최근 몇 년 간 한·중 고위급 회담은 코로나19의 여파가 있긴 했지만, 칭다오, 톈진, 샤먼 등 베이징 외 지역에서 열렸다.

'北 이슈' 할 말은 한 韓

모처럼 물꼬를 튼 고위급 대화지만 조 장관은 원칙에 따라 껄끄러운 주제도 회담 테이블에 올렸다. 탈북민 강제북송, 북·러 군사 협력, 북한의 대남 도발과 관련해 차례로 우려를 표명하며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촉구했다.

지난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고 중국이 기권한 가운데 대북 제재 이행을 감시하던 전문가 패널의 임기가 종료됐는데, 이와 관련한 논의도 이날 회담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한·미·일은 우방국을 중심으로 전문가 패널을 대체할 새 메커니즘을 구상 중인데, 이날 조 장관은 왕 위원에게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향후 대북 제재 이행과 감시에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조 장관과 왕 위원이 13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산책하는 모습. 외교부.

조 장관과 왕 위원이 13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산책하는 모습. 외교부.

다만 북한 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기존 입장에 변함은 없었다. 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 위원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고, 중국 외교부도 "한반도 문제가 논의됐다"고 짧게만 전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두둔하는 듯 했던 "북측의 정당한 우려 해소"를 공개적으로 꺼내들지 않은 건 주목할 만 하다.

강제북송 문제에 대해서는 왕 위원이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국내법·국제법·인도주의에 따라 적절히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만 단속 나선 中

한국 발표에선 빠졌지만, 중국은 이날 회담에서 대만 문제에 집중했다. 왕 위원은 "한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하고, 대만 문제를 적절히, 신중히 처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는 전했다. 왕 위원은 또 "한·중은 함께 무역 보호주의를 반대하고 국제 자유무역 체계를 지키며 원활한 산업망, 공급망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중심의 대중 견제 움직임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중 관계가 반등 기회조차 잡지 못한 채 저점을 유지하는 원인을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에서 찾는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고 한 윤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회담 결과를 발표하면서 중국 측이 대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이런 구체적 불만 표시 없이 원론적 입장 표명으로 갈음한 것은 자국의 원칙을 주장하되 한국을 압박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려는 의도로 읽힌다. 조 장관 또한 "대외 관계를 제로섬 관계로 인식하지 않는다", "이견이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하자"며 미·중 갈등 국면이 한·중 관계에 부정적 여파를 끼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13일 오후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 연합뉴스.

13일 오후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 연합뉴스.

고위급 교류 힘 받나

이날 회담에서 양국이 고위급 교류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도 성과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비롯한 정상급 교류 문제도 지난해 11월 외교장관회담에 이어 재차 논의됐다고 한다. 하지만 외교부는 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는데, 시 주석의 방한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듯한 오해를 사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오는 26~27일 서울 개최를 추진 중인 한·일·중 정상회의에 대한 막판 협의도 이뤄졌는데 조만간 일자를 공식 발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3국 정상회의에는 중국 측에서 리창(李强) 국무원 총리가 참석한다. 정부 내에선 리 총리의 방한이 예정대로 이뤄지면 시 주석이 방한하길 기다리기 전에 윤 대통령이 먼저 방중할 명분이 마련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중국이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염두에 두고 미국의 동맹·우방을 끌어당기는 동시에 한·미·일 3자 결속을 지속적으로 견제하려 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달 말 한·일·중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중 양국이 큰 갈등 없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준 건 분명 긍정적인 성과"라며 "중국 입장에선 최근 라인 야후 사태로 한·일 간에 벌어진 틈새를 파고들려고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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