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왕비, 또 하나의 개막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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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카 무자 빈트 나세르 왕비(右)가 셋째 아들인 셰이크 조안 빈 아마드 알사니 왕자가 건넨 성화봉으로 작은 성화대에 점화한 뒤 밝게 웃고 있다.[도하아시안게임조직위 제공]

"우리가 가진 것은 땅에 묻힌 자원만이 아닙니다. 이 작은 불꽃이 우리의 정신을 전 세계에 보여줄 겁니다."

지난달 29일 도하 시내 서쪽의 '에듀케이션 시티'에서는 또 하나의 개막식이 열렸다. 카타르의 왕비인 셰이카 무자 빈트 나세르는 광장에 설치된 1m50㎝가량 높이의 '작은 성화대'에 불을 붙이며 수천 명의 시민과 학생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작은 성화는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칼리파 타워의 성화와 같이 계속 타오른다.

왕비가 점화하자 사람들은 카타르 국가를 소리 높여 불렀다. 그리고 진한 포옹의 시간이 이어졌다. 국모에 대한 경외의 자세 대신 그들은 친근감을 표시했다. 왕비의 정책을 지지하는 국민의 모습이다.

2003년 완공된 300만 평 '에듀케이션 시티'의 성화는 의미가 남다르다. 미국의 5개 명문대(카네기멜런, 버지니아 주립대, 텍사스 A&M대, 조지타운대, 코넬 의대)의 분교가 들어선 이곳은 '해방구'다. 영어로만 수업하고, 교육에 대한 자율권이 보장돼 있다. 일종의 교육특별시다. 1995년 정권을 잡은 셰이크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국왕은 교육 개혁을 국가 제1 과제로 삼았다. 그리고 아내인 셰이카 무자에게 그 일을 맡겼다. 왕비는 카타르 교육을 총괄하는 '카타르 파운데이션'을 세우고, 에듀케이션 시티 건설에 들어갔다. '새 교육'과 여성의 사회 참여를 주도하고 있는 왕비는 카타르 개혁의 브레인이다.

카타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거대한 행사뿐 아니라 에듀케이션 시티의 자유롭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에듀케이션 시티의 불꽃은 이틀 뒤 스포츠 시티로 옮겨졌다. 두 개의 시티는 모두 도하 시내에 있으며, 카타르의 개혁과 개방을 상징하는 곳이다.

아랍권 최대 방송인 알자지라의 할라 마무드 기자는 "카타르가 아랍권이 향후 지향해야 할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종교 색채를 빼면서 내실 있는 성장을 하고 있는 카타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다. 이슬람 과격세력의 폭력에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중동이기 때문이다.

도하=서정민 특파원,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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