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묻자 "호랑이띠"...주한호주 대사 "한국은 가족 준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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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제게 가족을 준 나라입니다. 호주서 고등학교 때 알게된 동갑내기 한인 여자친구가 지금의 제 아내죠.”   

외교관 37년 경력의 제프 로빈슨(62) 신임 주한 호주대사는 한국 부임이 벌써 세 번째다. 외교관이 된 이듬해인 1988년, 첫 부임지가 한국이었다. 5년 뒤 호주에 귀국해 3년간 한국과장을 지냈다. 두 번째 임기(2007~2011년)엔 공관차석으로 부임했다가, 이번엔 대사로 한국에 돌아왔다. 그 사이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태어나 한국 고등학교를 다녔던 딸은 몇 년전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외교관이 돼 한국에서 영사로 일했다.

지난달 26일 취임한 '한국통' 로빈슨 대사를 8일 호주 대사관에서 만났다. 나이를 묻자 한국어로 '호랑이띠'로 답할 만큼 한국 문화에 익숙한 그는 중앙일보에 “호주와 한국은 외교·안보, 경제·문화 등 모든 면에서 협력할 최적기를 맞이했다”면서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가치 있는 파트너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제프로빈슨 신임 주한호주대사가 8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호주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20240508

제프로빈슨 신임 주한호주대사가 8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호주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20240508

-경력 대부분이 한국과 관계있다.  
"한국은 제 가족 둘이 태어난 특별한 나라다. 부임 첫 해는 외국인이 어딜 가도 눈에 띄던 시절이었다. 두 번째 부임했던 시기에 중위국이었던 한국이 선진 경제국으로 발돋움했다. 한국의 발전 여정에 저도 함께해왔다. 광양, 포항, 제주…안 가본 곳도 거의 없다."
-한국의 위상 변화를 언제 실감하나. 
"삼성전자, 현대기아차 등 대표 기업의 위상에서 확인한다. 음식·콘텐트 등 소프트파워가 국제적인 매력이 있다. 호주 외교부에서 한국에 부임할 주니어 외교관 1명을 뽑는데 60명이 지원했다. 그만큼 호주 외교가는 한국의 미래를 밝게 본다. 멜버른대학 한국어 교사 양성 과정도 인기다. 수요가 많아 공급이 달린다." 
제프로빈슨 신임 주한호주대사가 8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호주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20240508

제프로빈슨 신임 주한호주대사가 8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호주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20240508

-양국은 역사적으로 인연이 깊은데.   
"호주·뉴질랜드 연합군을 기리는 안작데이(4월 25일·한국의 현충일과 비슷)를 기념해 92세 호주인 한국전 참전용사가 한국에 초대됐다. (※호주군 1만 7164명이 한국전에 참전해 340명이 전사했다.) 19세 때 겪은 고통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한국행을 꺼렸던 분이다. 그러나 한국을 방문해 눈부신 발전상을 보자 "나의 고통과 전우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희완 국가보훈부 차관이 3월 26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열린 '3.1운동을 도운 호주 독립운동가 기념식'에서 제프 로빈슨 주한 호주대사에게 선정패를 전달하고 있다. 마가렛 샌더먼 데이비스 등 3명의 호주 선교사들은 3.1운동이 일어나기 전 부산 일신여학교(현재 부산 동래여고)를 세워 학생들에게 신사참배 반대, 3.1운동에 참여하도록 하고 학생들을 적극 보호한 공적을 세웠다. 뉴스1

이희완 국가보훈부 차관이 3월 26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열린 '3.1운동을 도운 호주 독립운동가 기념식'에서 제프 로빈슨 주한 호주대사에게 선정패를 전달하고 있다. 마가렛 샌더먼 데이비스 등 3명의 호주 선교사들은 3.1운동이 일어나기 전 부산 일신여학교(현재 부산 동래여고)를 세워 학생들에게 신사참배 반대, 3.1운동에 참여하도록 하고 학생들을 적극 보호한 공적을 세웠다. 뉴스1

-한·호 협력을 증진할 분야는.  
"양국은 상호보완적이다. 호주가 천연자원·에너지·소고기·유제품 등을 수출해 한국 경제의 엔진 역할을 한다. 한국이 생산한 전자제품, 자동차 등을 호주가 산다. 유망 분야는 친환경·저탄소 에너지 분야와 방산이다. 한국은 호주의 주요 교역국이다. 특히 2021년말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 장갑차 수출 계약을 맺으면서 3대 교역국이 됐다. 호주는 방산 분야 요구 수준이 매우 높다. 그만큼 한국이 신뢰할 공급자라는 뜻이다. 또 한국은 호주 호위함의 수주경쟁을 하는 4개국 중 하나다."
-오커스(미국·영국·호주 3자 안보협력체)에 한국의 참여 여부를 두고 관심이 커졌다.     
"지난 1일 한·호주 ‘외교·국방장관(2+2) 회담’ 공동성명에서 인공지능(AI) 등 8개 첨단 군사 역량을 공동 개발하는 '필러2'에 한국이 추가 파트너국으로 고려된다는 사실을 환영한다고 적시했다. 한국은 매우 인상적인 기술을 가졌고, 호주 입장에서는 가치를 공유하는 전략적 협력국이다."    
1일(현지시각) 호주에서 만난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 뉴스1

1일(현지시각) 호주에서 만난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 뉴스1

-한국가 오커스에 참여하면 중국의 반발이 예상된다.   
"(중국의 우려와 달리) 오커스는 역내 안정·안보를 담보하고 억제력을 갖추기 위한 것이지, 분쟁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커스 국가 사이에선 "전쟁나면 모든 국가가 얻을 게 없다"는 컨센서스가 있다. 오커스는 역내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호주도 수 년간 대중 외교에 어려움이 있었다. 호주의 원칙과 전략은. 
"대립각을 세우기보다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공동 이익 추구가 핵심이다. 중국은 중요한 국가이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갈등보다 협력이다. 단, 협력할 때는 국제법과 시스템 아래서 해야 한다. 또 힘에 의한 균형과 강압은 절대 안 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강대국이 아닌 한·호주가 중국을 상대로 효율·실용 외교를 하려면 서로 도와야 한다. 입장이 비슷한 국가들 간의 공조도 필요하다."
-북한 문제에서 양국의 협력 포인트는.     
"2+2 회담에서 북한의 불법 핵미사일 개발 자금원을 차단하고 러시아의 북한 무기 지원을 저지하기 위해 공조하자는 논의가 나왔다. 북한과의 대화는 열어두면서 억제력은 유지해야 한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안 위반시에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제재를 어겨도 보상이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줘선 안 된다. 호주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에 계속해서 동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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