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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셋이 암환자"…'우주환경' 만들어 항암제 찾는 이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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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15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주에 있는 시드니공과대학(UTS)의 지하 1층 실험실에선 세포 배양 작업이 한창이었다. 여느 실험실과 다른 건 이 곳에 놓여 있는 네모난 은색 장비 내부가 지구 밖 우주처럼 중력이 거의 없는 상태라는 점이다. ‘미세중력(microgravity)’ 상태에서의 신약 개발은 최근 세계적으로 각광 받고 있는 분야다.

미세중력 환경을 지구에서 구현하는 장비인 ‘바이오 그래비티’를 만든 호주 과학자 조슈아 초우(40) 익스플로 바이오로직스 대표. 서유진 기자

미세중력 환경을 지구에서 구현하는 장비인 ‘바이오 그래비티’를 만든 호주 과학자 조슈아 초우(40) 익스플로 바이오로직스 대표. 서유진 기자

호주는 자금력 뛰어난 글로벌 기업에서나 가능했던 미세중력 실험 환경을 저렴한 비용으로 구현하는 장비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바이오 그래비티'라고 부르는 이 장비의 제작자 조슈아 초우(40) 익스플로 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어머니·이모 등 가족 세 명이 유방암·폐암·자궁경부암을 앓아 암 치료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게 미세중력 장비를 개발하게 된 계기”라고 밝혔다.

호주 UTS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 치과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그는 모국에 돌아온 뒤 암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미세중력 장비 개발에 매달렸다. 실패를 거듭한 끝에 2019년 티슈 상자 크기의 장비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초우 대표는 "미세중력에서 실험한 결과 난소암·유방암·비암·폐암 등 4가지 암세포의 80~90%가 활동을 멈췄다"고 소개했다.

미세중력 하에서는 약의 원료인 단백질을 합성하면 지구보다 훨씬 균일하고 순도높은 결정을 만들 수 있다. 서유진 기자

미세중력 하에서는 약의 원료인 단백질을 합성하면 지구보다 훨씬 균일하고 순도높은 결정을 만들 수 있다. 서유진 기자

미세중력 상태에서 약의 원료인 단백질을 합성하면 지구보다 훨씬 균일하고 순도 높은 결정을 만들 수 있다. 같은 재료로 의약품을 더 많이 만들 수 있어 효율성도 높다. 미 제약사 머크가 미세중력에서 만든 면역 항암제 키트루다의 경우 회사 연 매출을 30억 달러(약 4조원)에서 172억 달러(24조원)로 끌어올릴 만큼 각광받고 있다.

초우 대표는 세포를 드나드는 신호 전달 물질인 엑소좀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몸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물질이라 체내 거부반응이 적어 관련 화장품·치료제가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미세중력에서 세포 배양을 하니 엑소좀이 기존보다 150% 늘어났다. 그는 “파킨슨병 환자인 이모가 전혀 거동할 수 없었는데, 바이오 그래비티로 개발한 엑소좀 주사를 맞은 뒤 조금씩 걷게 됐다”고 밝혔다.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초우 대표가 스스로 주사를 맞았다고 한다.

미세 중력에서 개발한 엑소좀 치료제를 맞고 있는 조슈아 초우 대표. "저를 실험대상으로 삼았다"고 소개했다. 서유진 기자

미세 중력에서 개발한 엑소좀 치료제를 맞고 있는 조슈아 초우 대표. "저를 실험대상으로 삼았다"고 소개했다. 서유진 기자

초우 대표의 기술이 상용화돼 빛을 보기까지는 주 정부와 대학 측의 도움이 컸다. 이날 동행한 에단 코길 NSW 기업투자 무역부 부장은 주 정부 등이 익스플로 실험실에 1150만 호주달러(약 104억원)를 투자했다고 밝혔다.

주 정부가 직접 투자한 이유는 지역 내 중소기업·스타트업에 미세중력 실험실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응용분야는 제약·화장품·유제품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소에서 짜지 않고도 우유의 질감·맛·영양을 갖춘 단백질 음료를 개발한 사례도 있다. 일본에선 오는 9월 바이오 그래비티로 개발한 화장품 '호시(星)'가 출시될 예정이다.

지난 15일 호주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NSW)주에 있는 UTS 공과대학 내 지하 1층 실험실에선 세포 배양 작업이 한창이었다. 여느 실험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미세중력(microgravity)’ 상태에서 세포를 배양한다는 점이다. 서유진 기자

지난 15일 호주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NSW)주에 있는 UTS 공과대학 내 지하 1층 실험실에선 세포 배양 작업이 한창이었다. 여느 실험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미세중력(microgravity)’ 상태에서 세포를 배양한다는 점이다. 서유진 기자

초우 대표는 향후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한국과학기술원(KAIST)엔 익스플로의 미세중력 장비가 설치돼 근감소증과 골다공증 관련 연구가 진행 중이다. 초우 대표는 "특히 화장품, 바이오 기술에 강점이 있는 한국 기업과 협력해 '윈-윈(win-win)'하고 싶다”면서 "인류의 큰 관심사인 건강과 미용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호주 워클리재단이 공동 주최한 ‘2024년 한-호주 언론교류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보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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