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子不語) 怪力亂神((자불어) 괴력난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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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숨 막히는 액션과 서스펜스의 연속, 스릴 만점.’ 흥행에 성공한 영화에 따라붙는 찬사이다. 성공한 영화는 대부분 ‘괴력난신(怪力亂神)’ 즉 상상 밖의 괴이한 이야기, 폭력적인 언행, 난잡하게 얽힌 인간관계, 믿기 어려운 귀신이야기 등이 많다. 흥행을 위해 제작자들은 ‘괴력난신’의 강도를 가능한 한 높이려하고, 스릴에 맛 들린 사람들은 갈수록 강한 스릴을 요구한다. ‘괴력난신’이 극점을 향해 치달릴 수밖에 없다. 공자는 이점을 예견하고, 극점을 향해 치닫는 ‘괴력난신’의 ‘이야기’는 자칫 사람의 마음을 악하게 할 수 있음을 염려하여 아예 ‘괴력난신’을 입에 담지 않고자 하였다.

怪: 괴이할 괴 亂: 어지러울 난, 神: 귀신 신. 공자는 괴이, 폭력, 난잡, 미신에 대한 말을 안 했다. 25x59㎝.

怪: 괴이할 괴 亂: 어지러울 난, 神: 귀신 신. 공자는 괴이, 폭력, 난잡, 미신에 대한 말을 안 했다. 25x59㎝.

이런 공자의 영향으로 중국에서는 소설, 희곡 등 ‘이야기문학’의 발달이 늦었다. 대신, 사람의 순후한 정서 함양을 돕는다고 여긴 시가 크게 성했다. 이야기를 선호한 서양이 셰익스피어와 같은 극작가를 낳은 데에 반해 중국에서는 이백, 두보와 같은 시인이 배출된 것이다. 물론, 시라고 해서 다 순후한 것도 아니고, 이야기라고 해서 다 ‘괴력난신’인 것은 아니리라. 다만, 지나치게 자극적인 ‘이야기’문화가 팽배한 지금, ‘괴력난신’을 그토록 경계한 공자의 생각을 되새길 필요는 있을 것이다. ‘막장’에 이르지 않으려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