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父 196억 재산 어렵게 찾아줬더니…변호사비 먹튀한 北주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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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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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이 남한에 있는 196억원 상당의 상속 재산을 되찾아 준 변호인단에게 일체의 보수 지급을 거부했다가 대법원에 제동이 걸렸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4일 A 법무법인이 북한 주민 안모씨 형제 측을 상대로 제기한 보수 약정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안씨 형제의 아버지는 남한에서 터를 잡은 재력가로 2012년 3월 사망했다. 이 소식을 북에서 접한 안씨 형제도 상속권자로서 몫을 주장하기로 결심했다. 우리 정부는 2012년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남북가족특례법)’을 도입해 북한 주민의 상속권을 인정하고 있다.

안씨 형제는 브로커를 통해 2016년 초 A 법무법인과 상속회복 청구소송 등에 관한 위임 및 보수약정을 체결했다. 약정에 따르면, A 법무법인이 소송이나 화해 등을 통해 분쟁을 해결한 경우 안씨 형제는 A 법무법인에 성공보수를 지급해야 하는데, 성공보수는 ‘총 상속지분의 30% 또는 이에 상응하는 금전’으로 정했다. 남북 간 소통의 장벽, 가족관계 증명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 책정한 비율이었다.

제1회 이산가족의 날인 지난해 9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화행사에서 한 이산가족 시민이 이산가족 찾기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1회 이산가족의 날인 지난해 9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화행사에서 한 이산가족 시민이 이산가족 찾기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씨 형제가 아버지 재산을 상속받는 과정은 산 넘어 산이었다. 우선 한국 법원을 통해 친생자 관계부터 확인받아야 했다. A 법무법인은 2016년 4월 안씨 형제를 대리해 서울가정법원에 친생자 관계 존재 확인청구를 했고, 이후 항소심까지 거쳐 2018년 8월 친생자 관계를 최종 인정받았다.

남한 내 상속인들 간에 이미 진행되고 있던 ‘상속재산분할심판’ 항소심에도 참전했다. A 법무법인은 안씨 형제를 대리해 ▶2016년 10월 필수적 공동소송인 추가신청서 ▶2017년 9월 당사자 추가신청서, 공동소송참가신청서, 유전자검사결과 감정서 등 각종 서류를 구비해 제출했다. 재판부는 안씨 형제의 참가신청을 받아들였고, 2019년 2월엔 안씨 형제 등을 비롯해 상속인들 사이에 화해가 성립했다

안씨 형제는 이로써 경기 남양주 토지(93억 8900만원), 서울 중구 소재 건물(8억4200만원) 등 총 196억 2400만원 상당의 재산을 상속받았다. 그런데 돌연 A 법무법인에 일체의 보수 지급을 거부하고 나섰다.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A 법무법인은 보수약정에 따라 상속재산 30%에 상응하는 58억 8700만원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안씨 형제 측은 “이 사건 보수 약정은 북한 주민인 피고들이 재산관리인을 통하지 아니하고 상속재산 등에 관해 한 법률행위이므로, 남북가족특례법 15조에 따라 무효”라고 맞섰다. 남북가족특례법 15조는  북한 주민이 상속 등으로 취득한 재산 그 자체는 물론이고 그 재산을 처분한 대가로 얻은 재산을 처분하는 행위가 재산관리인을 통하지 않으면 무효인 것으로 규정한다. 북한 주민이 취득한 남한 내 재산이 북한으로 유출돼 다른 용도로 전용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에서 도입됐다.

1심은 “안씨 형제가 (재산관리인을 거치지 않고) 변호인단과 직접 맺은 보수약정은 남북가족특례법 제15조에 따라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며 안씨 형제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자 A 법무법인은 “보수약정이 남북가족특례법 위반으로 무효라 해도, 위임 약정은 유효하고, 피고들은 소송물의 가액과 소송당사자로서 얻은 이익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산정되는 통상의 보수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항소를 제기했다. 보수약정이 무효라해도 변호인단을 선임한 ‘위임 약정’ 자체는 유효하므로 위임에 따른 대가를 달라는 취지다. 2심 재판부는 이번에도 “위임약정과 보수약정은 경제적, 사실적으로 일체로서 행하여져서 그 전부가 하나의 계약인 것과 같은 관계”라며 다시 안씨 형제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보수약정이 무효라고 하여 곧바로 이 사건 위임약정이 무상의 위임계약이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단지 보수 지급 및 수액에 관하여 명시적인 약정이 없는 경우에 해당할 뿐”이라며 “원고와 피고들 사이에는 응분의 보수를 지급할 묵시의 약정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환송 후 원심으로서는 이 사건 보수약정이 무효라고 하더라도 위임약정이 유효한 이상, 위임약정에 따른 보수액은 사건 수임의 경위, 사건의 경과와 난이 정도, 소송물 가액, 승소로 인하여 당사자가 얻는 구체적 이익, 기타 변론에 나타난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결정하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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