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대 스마트기기 누가 관리?…교사-교무실무사 갈등 폭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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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지역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스마트 기기를 활용해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전북 지역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스마트 기기를 활용해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수업 집중" VS "업무 떠넘기기" 

전북 학교 현장에서 교사와 교무실무사 간 갈등이 폭발했다.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이 이미 지급했거나 보급할 20만대 넘는 노트북·태블릿PC 등 스마트 기기를 누가 관리할 것인지를 두고서다. 교사 노조는 "교사가 수업과 생활 지도에 집중할 수 있게 교무실무사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교무실무사 노조는 "비윤리적인 떠넘기기"라고 반발했다.

28일 전북교육청에 따르면 전북교사노조는 지난 3일 성명을 내고 "주당 20시수 이상 수업해야 하는 정보 담당 교사는 전자 기기 대여·반납 등 관리 업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없으며, 분실 사고도 피할 수 없다"며 "정보 기기 출납원을 교무실 상주 인력인 교무실무사로 지정해 달라"고 교육청에 요구했다. 교무실무사는 학교 교무실 업무를 지원하는 교육공무직원(무기계약직)이다.

도내 공립학교 교무실무사는 이달 1일 기준 총 732명이다. 이들은 각각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전북지부(이하 공공운수노조)·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전북지부·전국여성노동조합 전북지부 등 3개 노조에 소속돼 있다.

전북교사노조 정재석(왼쪽 둘째) 위원장과 강현아(왼쪽 셋째) 교권국장 등 집행부가 지난 12일 전북 전주시 효자동 전북교육청 창조나래관 회의실에서 교육청 측 전산행정팀·정책행정과 실무자들과 정보 기기 출납원 교무실무사 지정 등을 협의하고 있다. 사진 전북교사노조

전북교사노조 정재석(왼쪽 둘째) 위원장과 강현아(왼쪽 셋째) 교권국장 등 집행부가 지난 12일 전북 전주시 효자동 전북교육청 창조나래관 회의실에서 교육청 측 전산행정팀·정책행정과 실무자들과 정보 기기 출납원 교무실무사 지정 등을 협의하고 있다. 사진 전북교사노조

공공운수노조 "업무 이관 주장 철회하라"

이에 대해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19일 전북교사노조에 공문을 보내 "교무실무사가 태블릿PC·노트북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학교업무기준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미 논의했던 과정에 대한 무례이며, 주장의 근거도 자기중심적"이라고 항의했다. 그러면서 사과와 함께 즉각 업무 이관 주장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전북교육청은 학교 내 업무 구분을 명확히 해 업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교사·공무원·교육공무직원 노조로 TF를 구성해 서로 공격하지 않고 합리적 합의를 끌어내기로 했다. 그런데 전북교사노조가 느닷없이 교사의 특정 업무를 교무실무사에게 맡기려 하자 공공운수노조는 "분노한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두 직군은 서로 "정치 기본권이 없는 교사가 학교 내 최약자"(전북교사노조), "계급 문화가 뿌리 깊은 학교 안에서 가장 힘없는 비정규직"(공공운수노조)이라며 '약자 논쟁'까지 벌였다.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보급한 스마트 기기가 쌓여 있다. 학생이 전학을 가면 기존 학교에서 전북교육청으로 학생이 쓰던 스마트 기기를 보내고, 교육청이 이 기기를 다시 전출 학교로 배송해 줘야 한다는 게 전북교사노조 측 설명이다. 사진 독자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보급한 스마트 기기가 쌓여 있다. 학생이 전학을 가면 기존 학교에서 전북교육청으로 학생이 쓰던 스마트 기기를 보내고, 교육청이 이 기기를 다시 전출 학교로 배송해 줘야 한다는 게 전북교사노조 측 설명이다. 사진 독자

교육청 "업무 이관은 단체 협약 위반"  

이에 정재석 전북교사노조 위원장은 지난 22일 본인 페이스북에 공공운수노조 측 공문을 공개하며 "수업 준비를 해야 할 교사가 공문 기안을 하고, 행정 직원이 해야 할 일을 떠맡아 학생 교육이 망가질까 봐 걱정된다"고 적었다. 이어 "교무실무사는 초·중등교육법과 전북도립학교 사무분장 규정에 따라 '행정 사무'와 '기타 사무'를 해야 한다"며 전산 업무 지원과 소모품 관리 등을 교무실무사 역할로 열거했다.

양측 갈등은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교무실무사 3개 노조가 뭉친 전북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지난 23일 정보 기기 출납원을 교무실무사로 정하라는 성명을 발표한 것을 문제 삼아 정 위원장 앞으로 "법적 조치 등을 하겠다"는 공문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전북교육청 한성하 대변인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교무실무사 업무 분장 권한은 사용자인 서거석 전북교육감에게 있고, 교육감이 이들과 임금을 비롯해 노동 시간·업무 등에 대해 단체 협약을 맺는다"며 "스마트 기기가 한꺼번에 보급되면서 교사 부담이 커진 건 맞지만, 현재로선 교사가 하던 기기 관리 업무를 교무실무사에게 맡기는 건 단체 협약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전북교육청 '1인 1스마트 기기 보급 사업'
전북교육청은 '에듀테크(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교육)' 기반 교실 환경 구축을 위해 885억9000만원을 들여 지난해 9월 도내 초·중·고교 757곳에 스마트 기기 6만5496대를 보급했다. 이른바 '1인 1스마트 기기 보급 사업'이다. 초등학교 6학년엔 태블릿PC 1만7616대, 중학교 2학년과 고등학교 1~2학년엔 노트북 4만7880대를 지급했다.

나머지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3학년은 오는 9월 추가로 7만9218대를 지급할 예정이다. 관련 예산은 1011억4240만원이다. 이에 따라 전북교육청이 2018년부터 이미 지급했거나 올해 보급할 기기는 총 20만4055대로 전체 예산은 약 2265억원(국비 포함)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부가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AI(인공지능) 기술 기반 디지털 교과서 보급에 맞춰 스마트 기기를 장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보 담당 교사를 중심으로 "관리해야 할 스마트 기기가 갑자기 늘어난 데다 기기 파손·분실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교사가 책임을 떠안고 있다"는 불만이 쏟아진다. 이에 전북교육청은 "2023~2024년 일괄적으로 보급되는 스마트 기기는 본청 물품으로 등록·관리한다"며 "교원이 교육 활동 중 기기를 파손·분실했을 땐 변상 책임을 면제하는 지침을 세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23년 이전에 보급된 스마트 기기는 학교장 책임으로 기기 분실·파손 시 학교 예산으로 처리할 수 있다"며 "교원 업무를 줄이기 위해 인력 확충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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