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해준다고요?" 분식회계등 소액주주 소송 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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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의 '보험성 정치자금'을 사면할 수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이후 사면의 범위와 실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과거처럼 단순히 형사처벌을 면제하거나 유예해 줄 수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지 않고 정치자금을 제공한 기업인에게 정치자금법 위반이나 뇌물 공여죄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또 검찰이 이 부분에 대해선 조사는 하되 기소를 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기업이 정치자금을 제공할 때 기업회계 원칙에 따라 자금을 집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거짓 장부(분식회계)를 통해 돈(비자금)을 만든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분식회계 없이 정치자금을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분식회계로 비자금을 조성한 기업들은 형사처벌보다 분식회계가 드러난 이후 감독당국의 처벌과 줄줄이 이어질 민사소송이 더 걱정이다. 기업들이 분식회계로 적발되면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증권거래법. 공인회계사법 등에 따라 처벌된다. 처벌내용은 대표이사.임원 해임 및 징계, 회사채 등 유가증권 발행제한, 검찰 고발 등이다. 분식회계에 대해 주주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벌이면 기업은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외감법상 분식회계를 회계적으로 사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면서 "이 모든 법과 규정을 포괄적으로 면제할 수 있는 한시적 특별법을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특별법도 현실적인 벽이 너무 높다. 불법으로 자금을 만들어 정치권에 제공한 사실을 없던 일로 하기에는 명분이 약하다는 게 중론이다.

특별법이 만들어지더라도 주주들의 손해배상 소송은 피할 길이 없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사면령이 발동돼도 주주의 민사소송까지 막을 수 없기 때문에 검찰이 아예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기업들이 분식한 자금을 어디에 썼는지를 가리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돈에 꼬리표가 붙지 않았는데 분식회계로 만든 돈이 정치권으로 갔는지, 대주주의 개인 주머니로 들어갔는지 분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송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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