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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개강은 했지만…“수업 참여 안 하면 F학점 유급” 딜레마 빠진 대학

중앙일보

입력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로 개강을 미뤄왔던 전국 40개 의과대학이 이달 중에 대부분 수업을 재개한다. 더 개강을 늦췄다간 최소 수업 일수를 채우지 못해 집단유급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이 의대 증원을 반대하며 수업을 거부하고 있어서 개강이 오히려 유급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6개 의대 수업 진행 중…“이달 말까지 대부분 수업 재개”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교육부는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과대학 수업 정상화 관련 브리핑’을 열고 전날 기준 40개 의대 중 16개 의대가 수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15일에 추가로 16개교가 수업을 재개하는 등 이번 달 말까지 대부분 의대에서 수업이 재개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학사 일정을 고려하면 이번 달 중으로는 개강해야 한다는 게 대학 측 설명이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대학의 매 학년도 수업 일수는 총 30주 이상이다. 한 학기에 최소 15주 이상인데, 의대는 실습 탓에 16주 이상 수업을 해야 하는 곳이 많다. 여기에 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인증 기준을 맞추려면 임상 실습 기간은 총 52주, 주당 36시간 이상이어야 한다. 인증을 받지 못한 의대 졸업생은 의사 국가고시를 볼 수 없다.

8일 오전 가천대 의과대학 건물은 의대생 휴학으로 한산했다. 빈 강의실 교탁에는 학생 명단이 붙어 있다. 서지원 기자

8일 오전 가천대 의과대학 건물은 의대생 휴학으로 한산했다. 빈 강의실 교탁에는 학생 명단이 붙어 있다. 서지원 기자

문제는 대학들이 학생들의 수업 거부로 의대 커리큘럼을 정상적으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교육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본과 3·4학년은 대부분 실습수업이 중단 또는 연기된 상태다. 일부 대학은 학생들의 수업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온라인 강의 자료를 내려받는 것만으로도 출석을 인정해주고 있다.

오석환 차관은 “과거와 같은 전통적 수업 방식이 아니라고 해서, 다운로드받아서 (수강)한다는 것만으로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의사로서 의업(醫業)을 진행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필요한 과제들을 정부와 학교가 계속 찾아내서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수업 참여 원하는 학생도” vs “학생들 여전히 굳건한 입장”

오석환 교육부 차관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의과대학 수업 운영 및 재개 현황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의과대학 수업 운영 및 재개 현황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에선 학생들의 수업 거부가 계속될 경우 정상적인 학사 운영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대다수 의대는 학생이 수업일수의 3분의 1에서 4분의 1가량 결석하면 F학점을 주는데, 한 과목만 F가 있어도 유급 처리가 된다. 학생들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수업을 이어가면 출석 일수 미달로 F학점을 받아 유급 처리되는 학생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무처장은 “집단유급 사태가 발생하면 의대 교육의 전반적인 질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물론, 유급생과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하는 2025학년도 신입생도 교육 과정에서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지도교수가 맨투맨으로 학생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사실상 학교에서 설득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날 수업 거부가 확인된 대학은 8개교로 전날보다 1개교 더 늘었다. 누적 휴학생도 1만 377명으로 전체 재학생(1만 8793명)의 55.2%에 달한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측은 “행정적 수업 재개와 학생들의 실질적 수업 수강은 다르다”며 “학생들은 여전히 굳건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오 차관은 동맹휴학을 승인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자 했던 학생들의 목소리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며 집단유급으로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수백억 써낸 대학들 “수요조사 의미 있나”

충남대학교 의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교수들과 의과대학 학생들이 5일 의대 운영대학 현장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충남대병원 의과대학을 방문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충남대학교 의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교수들과 의과대학 학생들이 5일 의대 운영대학 현장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충남대병원 의과대학을 방문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한편 교육부가 전날까지 제출하라고 한 교육여건 수요조사에서 일부 의대들은 수백억 원 규모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속병원까지 포함하면 천억원이 넘는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한 대학들도 있었다. 앞서 교육부는 각 대학에 내년부터 2030년까지 의대 증원에 따라 필요한 강의실과 실습실, 교원, 투자 규모 등을 제출해 달라고 했다.

수도권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의학 기술이 발전하는 데 따라 필요한 기자재 등이 바뀔 수 있어서 현재 기준으로 막연히 예상한 금액일 뿐”이라며 “정원 재조정 가능성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정부가 얼마나, 어떻게 지원할 계획인지 알 수 없는데 수요 조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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