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 기름 끼얹나…“유가 100달러” 경고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불안한 중동, 경제 파장

지난해 10월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그동안 국내 경제에 직접 미치는 영향이 작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중동에 있지만, 둘 다 산유국이 아니라서다. 그런데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공습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공습 직후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은 “적(이스라엘)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가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격 시점으로는 이슬람 금식월인 라마단의 ‘권능의 밤’이 있는 10일 전후가 거론된다. 이란이 실제 이스라엘 공습에 나설 경우 이란과 미국의 대리전으로 번질 수 있다.

선물로 거래하는 국제유가는 지난주 6거래일 연속 올랐다. 지난 5일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북해 브렌트유 6월 인도분은 배럴당 91.17달러에 마감했다. 같은 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86.9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올해 들어 브렌트유와 WTI는 각각 18%, 21% 급등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도 유가 전망에 일제히 경고등을 켰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해 여름 지정학적 긴장과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 등을 근거로 유가가 배럴당 95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봤다. JP모건체이스는 오는 8~9월 유가가 100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씨티그룹도 연내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이란은 OPEC에서 세 번째 큰 산유국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이란의 원유 생산이 10만 배럴 감소할 때마다 국제유가 전망치가 배럴당 1달러씩 상승한다. 이란은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낀 나라이기도 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중동 이외 산유국이 가진 예비 산유량만으로 유가 급등을 막기 어렵다. 유광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예멘 후티 반군의 공습이 가져온 홍해 발(發) 물류 대란처럼 ‘호르무즈 발 석유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국내총생산(GDP) 1만 달러 당 원유 소비량이 5.70배럴로 1위다(2020년 기준).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만큼 중동 불안에 더 취약하다. 최근 3%대로 반등한 물가 상승률도 과일(사과·배 등)과 함께 석유류가 이끌었다. 지난달 석유류 물가는 1년 전보다 1.2% 올랐다.

한편, 중동 정세 불안·미국 경기 호조 등 강(强)달러 요인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달러당 원화값이 1350원대에 자리 잡는 모양새다. 이러한 강달러 기조가 길어지면 불안한 국내 물가를 더 자극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은 전 거래일보다 0.4원 내린(환율은 상승) 1353.2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11월 1일(1357.3원) 이후 5개월 만에 최저점이다. 원화 가치는 지난달 11일엔 1310.3원까지 올라갔지만, 이달 2일(1352.1원), 5일(1352.8원)엔 각각 1350원대로 내려앉았다. 한 달도 안 돼 40원 넘게 내린 셈이다.

배경엔 달러화 강세가 있다. 특히 미국의 탄탄한 경기 지표가 강달러를 부추기고 있다. 3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1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고, 비농업 고용 증가 폭도 시장 예상치를 훌쩍 넘어 ‘서프라이즈’를 찍은 게 대표적이다. 앞으로도 강달러에 가까운 변수들이 남아있다. 이란이 이스라엘에 보복을 공언하는 등 중동에 드리운 전운은 짙어지고 있다. 전쟁 우려가 커지면 위험 회피 심리 속에 ‘안전 자산’ 달러 등으로 수요가 쏠릴 수밖에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